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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과 1894년 조선을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과연 달라졌는가?

 

1894년 조선을 살아낸 여성들은 나에게 동지적 자매애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들은 여성이었고, 나 또한 2020년을 살아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나의 어머니였고 나의 딸이었고 나 자신이었다. 조선의 여성들은 나에게 말을 건네오지 못한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혹여 존재에 대한 기미를 느꼈다 해도 존재는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며 자살을 종용하는 순간에 치닫는다.

여성의 정숙과 순결이 강요되는 남성중심의 교육풍토는 많이 바뀌고 변화된 듯 보이지만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자이며 성적 노예로 외면 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은 권력을 가진 관료층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여성들은 그들의 권력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두려움과 공포마저 느끼고 있다. 정치, 문화, 예술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저지른 미투 현장에서 우리 사회는 숨겨왔던  민낯을 드러내며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가려졌던 치부가 드러나는 오물의 현장은 우리가 믿었던 많은 것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짧은 깨달음이어서 대중들에게, 피해자 자신이었던 여성에게서조차 또 다시 잊혀지고 있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한 듯 보인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그야말로 거듭되는 파렴치한 사건들에 실망을 넘어 인간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자괴감마저 갖게 한다. 다시 여성으로 돌아오면,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조선시대의 여성들과 무엇이 다른가? 여성 스스로 말할 수 있는가를 되묻고 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이러한 대접을 받고도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과 체념을 가지고 견뎌낸다고 했던 헤세 바르텍의 시선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여성은 때로 어머니임을 핑계 삼아 제도의 바깥으로 떨어져나감을 스스로 두려워 한다. 권력과 더불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들의 갇힌 사고를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교육과 가부장적 틀 안에서 움직이는 구조화된 시스템 또한 권력을 떠받치는 주요한 무기다. 사회와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들의 안쪽에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비겁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돈과 권력으로 성을 노예화시키는 남성들은 그것을 즐기며, 즐길 수 있는 자리로 오르기 위해 온갖 투쟁의 역사를 조작하고 만들어내는 힘을 기르는 중이다. 

가정에서조차 여성을 성노예화 시켰던 조선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무개의 딸, 아무개의 자매라 불리던 여성이 아무개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상황은 지금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오히려 여성들 스스로 어머니임을 무기삼아 온 것은 아닐까

결혼으로 이루어진 한 가정은 견고한 성이다. 아이를 낳고 여성은 무수한 노동력을 제공하며 경제력을 공급받는다. 남성은 경제력을 제공하는 수고로움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힘을 갖는다. 물론 이 상황도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여성들은 남성들의 경제력에 비해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며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속에 갇혀 산다.

아름다운 가정의 참모습을 그리며 여성은 아가페적 사랑에 동화된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사랑인가. 우리는 눈치 챘으나 알아내려 하지 않는다. 꿈은 꿈으로 끝나야 평화로운 것이다.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꿈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깨어나라고 외치는 과거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무수한 포말이 아프게 부서지는 그 자리에서, 눈을 뜨고 깨어나는 순간 조선의 여성은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혹은 그녀에게 말을 건네 온다.

한바탕 꿈일지라도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조선의 여성들은 묻고 있다. 당신의 삶은 당신으로 온전한가?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그녀들은 답한다.

조선의 여인이여당신의 고단한 몸을 쉬게 하고 싶소말하지 못한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게 하고 싶소더 이상 꽃으로 아름답지 마소.

당신의 얼굴을 내 얼굴에 맞대게 하고 나는 당신과 하나였음을 고백하오당신에게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오부디 당신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멀지않은 미래의 딸들에게 희망이 되길그녀들 자신이 되길 바라오

잊혀진 과거는 현재와 더불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리하여 조선의 여인들은 내 어머니로, 나로써 딸들로써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고단한 여행길에 나는 1894년의 조선을 걸었다. 똥천지였던 조선의 골목, 무덤 같았던 그들의 집은 어리석었으나 지난한 삶이었다. 그들의 삶에 오롯이 충실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조차 무지했던, 수줍었으나 강인했던, 강인했으나 외로웠던 조선의 여인들과 조우하며 나는 유럽인이었던 헤세 바르텍에게 차라리 고마움을 느낀다. 그가 조선의 여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안타까운 긍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백의 민족에 가려진 조선의 여인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공부길에 던져진 또 하나의 질문을 곱씹으며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 할 것이다. 1894년 조선을 살아내야만 했던 여인들이 거기, 아직 서 있다. 2020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나와 그녀들을 바라보며

 

어제 선생님의 글씨를 뜻하지 않게 너무나 싼값에 구입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사진을 올려봅니다. 사유의 글귀를 통해 제 마음을 되짚어 곱씹어 보는 기회를 만나게 되니 공부하는 초심자로써는 철없이 행복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희명자님께 사진을 올려달라 부탁했는데 오히려 어제 제가 읽은 부족한 의제의 글을 올려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부끄럽지만 흔적을 남겨 봅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먼훗날 지금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기를, 그 앎으로 조금이나마 변화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0802_19423126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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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泥子 2020.08.04 16:58
    거센 풍랑을 헤치며 작은 쪽배를 타고 1894년, 여름 조선에 다녀온 느낌입니다.
    글 속에 담긴 이 한편의 시가 참 좋습니다.


    조선의 여인이여,

    당신의 고단한 몸을 쉬게 하고 싶소
    말하지 못한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게 하고 싶소
    더 이상 꽃으로 아름답지 마소

    당신의 얼굴을
    내 얼굴에 맞대게 하고
    나는 당신과 하나였음을
    고백하오
    당신에게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오
    부디 당신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멀지않은
    미래의 딸들에게 희망이 되길
    그녀들 자신이 되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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