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형식 1
인간으로 살면서 안타까운 게 하나 있다면, 꼭 사후(事後)에 소득이 생긴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사전이 아니라 사후인지 그 이치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보다 중요하다 싶은 의견은, 그러한 소득이 사후에 인지되더라도, 돌이켜지지 않을 다른 시선으로 다른 길을 향해 서게 되어버리는 경우, 이미 준비된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생한 사태에서 연유하는 충격을 흡수하고 몸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기입될 수 있으려면 ‘인지적 가능성’ 즉, 사태를 헤아릴 줄 아는 ‘준비된 말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견인 것입니다. 즉,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오래된 신탁처럼, 자신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철학적 테제가 정신의 형식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신의 형식 2
자기에게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이를 문제시하고, 진단하고, 정리하고 조정해 간다는 점.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태를 주관할 수 있는 ‘준비된 언어’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 즉 의사가 병명을 밝혀낼 수 있어야 환자를 치료하듯이 자신의 문제에서 문제시되는 것에 대한 언어적 언명이 있어야 문제에 대한 접근이나 치유가 가능하다는 점. 아니면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병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의사가 새로운 병명을 언명하여, 사태를 수습하듯이,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언어로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의 있고 없음은 자기를 문제시한다는 철학의 본령 자체에 혹은 철학적 수행성에 충실한 척도가 된다는 점.
정신의 형식 3
정신의 형식 3가지; 거짓, 애욕, 원념.(k, 2018.12.29. 속속)
‘내용’에 있어 완성되는 공부란 없다. 자신의 인생과 더불어 ‘형식’ 속에서 타협하는 것이니, 결국 깨달음이란 자아의 형식에 따른 메타-수행이다. (차마, 깨칠 뻔하였다, 297쪽)
정신의 형식 4
인간은 정신이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이란 자기(自己)다.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란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의 관계다. 바꿔 말하면 관계가 자기 자신에게 관계한다고 하는 관계의 내부에 있는 자기를 뜻한다. 따라서 자기란, 관계를 의미하지 않고 관계가 그 자신에게 관계되는 것을 뜻한다. (키에르케고르, 절망에 이르는 병, 범우사, 23쪽)
자기 자신에게 관계되는 관계, 즉 자기를 자기 자신이 정립(定立)했거나 타자에 의하여 정립되어졌거나, 그 어느 것 중의 하나여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관계되는 이 관계가 타자에 의하여 정립되어졌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관계되는 일뿐만 아니라, 관계 그 자체를 정립한 제삼자에 대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처럼 파생적으로 정립되어진 관계가 인간의 자기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관계되어진 동시에, 이 자기 자신의 관계에 있어 타인(他人)에 관계되는 관계다. (키에르케고르, 절망에 이르는 병, 범우사, 24쪽)
정신의 형식 5
“그것은 무위와 부재의 부사적(副詞的) 사귐이 가능한 사이공간”
“상처받은 자들, 그리고 체계와 생산적으로 불화하려는 자들만이 그 상처와 불화의 급진성 속에서 동무가 되어 걷고, 동무를 부른다. 그래서 상처와 불화를 매개로 산책은 고독하지만 생산적인, 여리지만 진득한 싸움을 자본제적으로 체계에 건다.”
“오직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관계(동무)를 향한 부정적-부재적-부사적 연대의 사잇길을 실험하고 있을 뿐이다.”
“교환과 물화의 자본주의적 체계에 대한 창의적인 불화, 혹은 불화하는 생산이 겉보기에 이르는 곳은 어디일까? 물론, 그곳은 ‘무능(無能)’이라는, 어떤 색다른 생산성이다.” (동무론, 455-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