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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이동하지 못한다(下愚不移)고 하였지요. 한 달에 한 차례 동학들과 나눌 영시를 고르는 제 기준이 보수화(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도 없는), 단순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매개로 사유하고 응하는 장숙에서, 시가 존재를 찾아가는데 머뭇거리면서도 반 발짝씩이라도 건너가는 디딤돌이 되도록, ‘함부로 진술된 진실이 아닌, 진실이 거주하는 고도의 언어적 구조물(신형철)’이고자 노력하는 영시를 찾겠습니다.

 

 

진실은, 그것이 참으로 진실인 한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인은 함부로 진실을 진술하기 보다는 진실이 거주하는 고도의 언어적 구조물을 구축해야 한다. 시는 진실이 표현되(면서 훼손되)는 장소가 아니라 은닉되(면서 보존되)는 장소다. 요컨대 문제는 언어를 대하는 태도다...이런 의미에서 나는 시인의 코기토를 나는 언어를 의심한다. 고로 나는 시인이다.’라는 명제에서 찾는다. 그 의심은 미학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시는 도대체가 그것이 시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그저 행과 연을 나눈 수필에 머물지 않고 언어를 의심하면서 겨우 한 줄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자해를 감당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형태 파괴, 실험, 그로테스크, 난해, 소통 불능 등등으로 규정되는 특질들이 그 자체로 이미 유죄라는 식의 언사들은 그래서 공허하다. 그것들은 그 무슨 비정상성의 징후가 아니라, 시가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 나타나는 어떤 진정성의 표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17

 

 

인간이 코끼리를 보면서 여러 가지 반응을 할 수 있잖아요. 동물행동학, 진화생물학, 시 등, 다양한 갈래의 서사가 나오죠. 하지만 굳이 시를 쓸 필요가 있나요? 안 읽으면 그만인 시를 말이죠. 그러나 안 봐도 괜찮은 글을 쓰는 인간의 행위 속에 인간의 인간됨이 있어요. , 인간이 대상을 파악하고 그 파악된 것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그 인식과 표현에 의해 자기가 바뀌는, 그만큼, (에고에서 나와) 셀프를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죠.

                     

                                                                                                                                       151회 속속 시읽기에서 K선생님 말씀

 

 

더불어 151회 속속에서 유재가 가져온 시를 읽어내지 못하며, 저만치 멀리 있는 타자로 대하는 저의 태도 속에서 下愚不移를 다시 한 번 체감하였습니다. “대상을 파악하고 그 파악된 것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그 인식과 표현에 의해 자기가 바뀌는, 그만큼, (에고에서 나와) 셀프를 가진 존재가 되는 것(K 선생님)이 시인의 존재 확장이라면, 시를 읽는 이들의 경우에는, 그 시적 표현과의 거리를 좁혀나가려는 타자성의 체험을 통해 조금 더 큰 존재로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읽기가, 혹은 공부가 현재의 나의 자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라, 이동할 수 있는 주체로 나아가는 징검돌이 되도록. ‘착한읽기 혹은 공부에 매인 저 자신의 자리를 의심하며 몸을 끄--고 나와, (기약은 없지만) 타자에 닿으려는 극진한 애씀으로 하루 하루가 채워지는 생활이기를 희망합니다.

 

 

  • ?
    는길 2023.05.01 21:09

    그날 저도 비슷한 비평을 챙겼고, 이동하지 못하는 공부의 자리가 개시되었습니다.
    ‘착함’이라는 강박적 자기표현이 정신의 행로를 어떻게 막고 있는가,
    ‘착함’과 ‘약함(무능)’에 대한 혼동에서 어떻게 관계의 현명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의심 없이 내면화된 관계 형식이 재배치될 수 있도록, 얼마간 흔들리고 머뭇거리고 멈추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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