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태희랑 하윤이 있잖아, 우리가 셋이 친한데,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걔네 둘이 싸우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그래, 왜 그래? 했더니, 하윤이가 ‘넌 빠져’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뒷걸음질) 쑤욱 빠졌어. 다른 거 하다가 둘이 잘 놀고 있길래, 다시 쑤욱- 들어갔어.”
조금 더 사회화된 열한 살 지현이는 그냥 쑥 들어가면 안 된다고, ‘넌 빠져’라고 한 친구는 함부로 말했으니 서율이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 더 에고화된 서른다섯의 나는, 그냥 그렇게 빠질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아이의 단순함(유연함)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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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게 그런 말(행동)을 할 수 있지?’ 질문 아닌 원망이고 혼란이었던 말을 흩뿌리며, ‘나’라는 증상을 앓곤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계기로, 내게 일어나지 않을 일도 내가 듣지 않아도 될 말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진실이 아프고 허무해서 체념했을까,
『나는 이제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럴 경우 모든 굳은 체념들이 살아날 것이다.』 (기형도)
그런데, 굳은 체념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제 증상조차 통제할 수 없는 여전한 몸을 가지고, 삶보다 커나가는 길을 감히, 내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