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리 주택' 답사 촌평
건축가 박진택은 그의 건축관을 이야기하며 스승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을 만든 것은 스승의 가르침이라 스스럼없이 말한다. 건축의 공간을 말하는 한국의 건축가와 영화적 시간을 이야기하는 영국의 건축가를 스승으로 둔 그는, 자신의 위치를 이 두 건축가 사이 어디쯤이라 이야기한다. ‘영향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스승을 말하는 건축가, 자신의 존재가 타자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고백하는 건축가가 남달리 다가왔다.
근대의 주체적 인간은 쉽사리 자신의 모방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방은 존재근거를 자신이 아닌 타자에게서 찾는 행위이기에, ‘천부적 재능’으로 점철된 예술가에게 모방에 대한 고백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자신을 믿는 주체적 인간은 모방에 대하여 자기 보호 기제를 작동시키거나, 이를 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 ‘타자성’의 철학은 이러한 자기독창성의 허영을 고발하는데, 그 중에서도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태초에 모방이 있었다.”고 말하는 지라르는 대상(타자의 욕망)을 모방함으로부터 문화, 인류사회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처음 욕망주체는 대상을 모방하지만 점차 대상과 경쟁관계를 이루는데, 결국 욕망의 대상은 사라진 채, 가속화된 모방경쟁은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대상)은 알지 못한 채 경쟁적으로 모방만을 일삼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여실한 단면을 극적으로 설명해주는 실례이다.
생계형 건축가들의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린 한국 건축계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난 다르다”는 무수한 외침 속에서도 그다지 실속을 차릴 수 없는 것은 철학이 부재한 탓도 크지만, 자신이 선 자리가 타인(대상)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아는 자가 드물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삶의 공간을 고민하는 건축가에게 있어 작업의 출발은 자신의 삶을 문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삶은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자신의 삶의 토대가 타자의 개입(영향)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자신의 길을 조형해가는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자신에 앞서, 스승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박진택은 자기 욕망에 정직한 건축가이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