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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에게서 역사란 인간사회를 더 좋은 상태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식의 양식을 기본적으로 변경시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사르트르는 역사적 발전이라는 연속성을 가정하여 의식의 우월한 양식과 열등한 양식을 구별하여 원시인들이 복합적·논리적 사고와 이해를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레비-스트로스에게서 역사란 시간상으로 펼쳐진 인간의식의 조합과정으로서, 인간정신의 구조적 변형만을 보여줄 따름이다.”(C.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 박옥줄 옮김, 한길사, 1998, 95쪽.)

  


만약 인간이 레비-스트로스의 입장처럼 행위에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정신 대신에 구조라고 불리는 계획된 회로에 따르는 존재라고 한다면, 구조주의는 모든 전통적인 휴머니즘을 위협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같은 책, 96.)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 주체에 대해서 낭만적으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욕망하고 바라는 것들이 체제의 기호이거나(장 보드리야르), 타자의 언어이거나(라캉), 이웃의 것(르네 지라르)이라는 이론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어리벙벙했다. 현전성에 매몰된 만큼 자신에 대하여 무지한 듯하다. 그래도 주체이기를 독려 받으며 어긋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일까. 그제야 경험을 환상에 희생시키지 않으며, 인간의 주체성에 대하여 의심할 수 있었다. 구금되고 구속된 인간 조건에 대한 지식이 내게도 전수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언어학적 구조주의를 과감하게 인류학에 접목시킨 인물이다. ‘소리를 분절(articulation)하고 차이를 만드는 소쉬르적 언어 구조주의로 친족 체계등 인간의 제도와 문화를 설명한다. 한 예로, 그는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으로 호혜성의 원칙(rule of reiprocity)’을 상정하면서 어느 시대 어느 종족에서나 발견되는 근친금혼(近親禁婚)’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로써 이뤄지는 결혼 제도 곧 여자의 교환에 대하여 그 만의 설명을 내놓는다.* , 쓰리지만 여기서 여자는 교환될 수 있는 기호(記號)로 간주된다는 점. 여자의 교환은 자기 부족과 타 부족을 구분하여 주고-받기의 기본 요건을 조성할 뿐 아니라, 충족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특이하게 접목시켜 곱씹게 하는 설명은, 언어적 구조의 분절과 근친금혼이라는 금지유사성이다. 초기 인류부터 현대 문명까지 이어지고 있는 근친금혼이라는 규칙이 인간의 언어적 구조, 즉 분절적 속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설명은, 표현된 것 배후의 심층 구조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점화시켰다.

어떤 땅에서는 세계적인 사상가가 대거 배출된다. 어떤 땅에서는 세계적인 사상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떤 지역에서는 지역성을 돌파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어떤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보편을 넘본다. 표층에 간여하는 구조적인 무엇의 사례랄 수 있겠다. 나는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성에 매이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는 곳이 꿈의 크기나 재능의 행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구조를 말하는 자리에는 인간의 주체성이나 책임의 영역을 말하는 목소리도 같이 배석 받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라는 레비-스트로스와 선택과 책임의 영역을 회피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사르트르의 논쟁에 이입하다가 문득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얼굴을 만든다고 배운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문득 인간의 역사에 대하여 다른 관점을 갖게 된 구조주자들의 얼굴이 궁금했다. 비관이나 자조의 옆모습? 인간사와 한발쯤 떨어져 관조하는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구조에 관한 질문이 구조주의자의 얼굴의 문제로 옮겨지니 흥미진진. 조금 더 나가보자. 그런데, 내가 떠올리고 있는 비관의 얼굴, 과연 구조주의자의 얼굴이 그러하기만 할까. 그들이 애써 말하려는 것이 비관과 자조의 얼굴, 그런 것이기만 할까. 어쩐지 얕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만일 그들의 비관실천의 영역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이라면, 비관의 실천이 열 수 있는 문이란 어떤 것일까? 과연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횡단하며 어디로 가자고 말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 답해 보건대, 그는 안이한 주체를 해체하며 다른 주체, 다른 희망을 키울 보다 나은 묘판(苗板)을 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희망이 배태되는 구조의 변동 같은 것 말이다.

인간의 역사를 진보로 보건 그렇지 않건, 계속 살아가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일상은 단 하나의 현실처럼 지속되고, 구조주의든 실존주의든 그 모든 주장이 사위도록 그 모든 이론보다 오래 산다. 그렇지, 구조가 선택 반경을 결정했어. 맞아, 삶의 지향보다 구조화된 증상의 힘이 셌어.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킬 수 있는 일상성속으로 구조의 절망을 기입하는 과제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일보 없이 반복하고 있는 말, 곧 죽어도 재생시키는 생각, 예기(豫期)하는 실패, 회귀하는 쾌락의 자리. 어찌 구조라는 설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구조’를 시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긋이 자신의 구조에 서서 인류의 구조와 만나고, 이 구조와 싸우는 일이 공부의 과정임을 나는 안다.

진정한 변화란 구조를 건드리는 일이다.” (선생님 블로그 글 中) 

 

  

*C.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 박옥줄 옮김, 한길사, 1998, 76.


그림1.jpg

(목공소에서 나무를 재단해서 서재에 처음으로 책장을 세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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