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9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중앙일보

입력 2022.11.28 00:29

지면보기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내가 존재, 그러니까 무(無)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내가 ‘사람’이 된 날이었다. 무의 아우라가 없는 것은 아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기 전인 것은 확실하지만, 4살이었는지 혹은 6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을 걷고 있었고, 그 사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청명한 야밤으로 별들이 많았다. 죄다 익숙한 존재물로, 바로 이 ‘존재라는 틈’의 틈입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할 일이 없는 범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무’, 무의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어머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없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절절하고 공포스러운 체감이었다, 존재의 틈으로 무가 번개처럼 찾아들던 순간이었다.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날이었다. 내게 ‘영혼’이 생긴 날이었다.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제도권 대학을 떠나 30년 가까이 인문학 공동체와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철학자·시인 김영민의 책이다. ‘무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이라는 제목의 윗글에 저자는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팡세』의 문장을 달았다. ‘공부의 철학자’로 유명한 저자는 수행자처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에게 공부란 “매사에 진짜를 구하는 애씀” 혹은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고, 그 덕으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사는 일”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6 踏筆不二(15) 曉乃還 file 지린 2020.06.11 118
255 길속글속 147회 '말하기 심포지움' 별강문 --- '말(言)'을 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했는가 유재 2023.02.17 118
254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file 지린 2022.03.26 119
253 진실은 그 모양에 있다 file 遲麟 2019.10.02 121
252 茶房淡素 (차방담소)-5-달의 집으로 가다 1 효신 2020.11.01 121
251 '밟고-끌고'의 공부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lector 찔레신 2023.02.05 121
250 녹색당 생각 토우젠 2020.05.06 122
249 낭독일리아스_돌론의 정탐편 1 허실 2019.10.17 123
248 踏筆不二(19) 天生江水流西去 지린 2020.09.17 126
247 茶房淡素 (차방담소)-2 효신 2020.09.20 126
246 自省 file 지린 2023.05.08 126
245 매실청 개시 기념, file 희명자 2020.10.14 127
244 길속글속 147회 '말하기 심포지움' 별강문 --- 잘 말하기 위한 노력들 燕泥子 2023.02.17 127
243 동시 한 편 소개합니다 1 遲麟 2019.09.30 128
242 우리의 아이 1 토우젠 2020.06.28 128
241 吾問(3) 언어화 1 敬以(경이) 2020.09.22 128
240 踏筆不二(3) 원령(怨靈)과 이야기하는 사람 2 file 遲麟 2019.11.15 129
239 踏筆不二(0) 2 遲麟 2019.10.22 130
238 산책_ 외출1 1 肖湛 2020.06.01 130
237 장독후기(22회) 2023/3/26 1 簞彬 2023.04.08 130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