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0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NDSL. 2024-02-17.

긁어 부스럼

 

사물을 가만히 만진다는 것은 하나의 덕()일 것이다. 사물이란 부득이 사람의 폭정 아래 내맡겨져 있기에 그를 잘 만진다는 것은 그와 다르게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의 물질성을 공대하는 형식이다.

 

타자를 만진다는 것은 애무(愛撫). 레비나스에 의하면 모든 것이 거기에 있는 세상 속에서 결코 거기 있지 않은 것과 놀이하는 방식”(윤리와 무한, 86)이 애무다. 애무로써 타자를 만지는 주체는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자를 가만히 만진다는 것은 일종의 삼가는 행위, 즉 신()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나를 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아토피처럼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동반하는 피부병은 자신을 어떤 특정 형식, 즉 오직 긁는 형식으로 만지라고 명령한다. 마침내 그 명령에 복종하여 긁기 시작하면 가려움은 특이한 종류의 통증이 되고 마치 화마처럼 환부는 아래로, 옆으로 퍼진다. 모든 피부병은 긁으면 극심한 부스럼을 일으킨다. 만지면 절대로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 모든 피부병은 내가 나를 만지는 방법은 오직 나를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물과 타자를 만지는 나의 손에 관한 하나의 무서운 진실도 드러내 준다. 어쩌면 그들을 만지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지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다면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손에는 가시가 있다.

 

공백 제외 557

유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 장숙소강(1)/ <금욕, 절욕, 그리고 하아얀 의욕>/ 2022/06/11 file 찔레신 2022.05.05 448
45 한문 서간문/한시(19): (1-20) 찔레신 2022.05.29 537
44 闇然而章(1)/ '오해받든 상관치 않아요' 2 찔레신 2022.06.21 414
43 闇然而章(2), 아니, 변명 따위는 안 해요 2 찔레신 2022.06.25 362
42 闇然而章(3), 짐작(시기)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겁니다. 2 file 찔레신 2022.07.10 326
41 闇然而章(4)/ 개념으로 길을 내고, 느낌으로 돕는다 2 찔레신 2022.07.24 284
40 한문 서간문/한시(20)/ (1-20) file 찔레신 2022.07.30 490
39 闇然而章(5)/ 서두르지 않고, 쉬지(게으르지) 않고 2 찔레신 2022.08.07 278
38 Hanna Arendt (1906~1975) (1-14) 1 찔레신 2022.08.16 286
37 闇然而章(6): 이기는 버릇으로 생활을 구성하고, 지는 싸움으로 희망을 만든다 2 찔레신 2022.08.21 328
36 Hanna Arendt (1906~1975)(2): (1-5/계속) 찔레신 2022.08.22 218
35 闇然而章(7), 몸은 섣부른 말을 싫어한다 2 찔레신 2022.09.04 356
34 闇然而章(8)/ 정신은 자란다 2 찔레신 2022.09.19 278
33 闇然而章(9), 청소하라, 神이 오시도록 2 찔레신 2022.09.27 365
32 闇然而章(10): 지금에 충실하라 5 찔레신 2022.10.16 317
31 闇然而章(11)/ 어떻게 현명하게 복종할 수 있는가? 2 찔레신 2022.10.30 276
30 闇然而章(12)/ 應해서 말해요, 혼자 떠들지 말고 2 찔레신 2022.11.13 250
29 Max Weber (1-17/계속) 찔레신 2022.11.13 265
28 闇然而章(13)/ 개인의 윤리는 자신의 실력에 터한다 2 찔레신 2022.11.27 278
27 闇然而章(14)/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2 file 찔레신 2022.12.12 23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