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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숙강 60회, 숙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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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ㅅ연

/

​단보선생께서는
"실수나 오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고 발생했을 때 어떻게 응하는 지가 실력이다. 
자빠지지 않으려 하지 말고 어떻게 잘 자빠지면 되는 지를 생각해야한다. 
오해를 원천적으로 발생 안 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내지 않고 다르게 응하고 잘 응해야 
자신의 체면과 분수를 챙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가르침은 그간 속속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신 부분이다.
특히 한 수강생이 허경영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물음에 응하시는 장면에서 이 가르침을 실천해서 보여주셨다.
앞으로 살면서 황당한 요구나 무례한 질문에 당황하거나 수동적으로 침묵하거나 끌려가지 않고
현명하게 응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이것은 처세를 가르치는 책이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실용적이고 고차원적인 소중한 배움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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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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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구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변화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닐까 한다. 이번 〈장숙강〉의 한 취지는 서양의 담론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학인이며 생활인으로서, 이론이나 담론과의 관계에서 적절함(度)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다. 단보 선생은 먼저 인간이 가진 심오한 지식인 철학과 사상을 조각난 지혜의 보고(寶庫)로 인정하면서도, 우리에게 전수된 서양의 담론이 어디까지나 타자의 언어라는 점, 여기에 내재한 간극을 직시하게 하셨다.

그동안 우리는 서양의 담론들에 겁을 내왔다는 진단이다. 〈언제 겁이 없어지는가〉. 타자를 과대하게 자신은 과소하게 오인하며 얻는 쾌락을 적발하면서,  어떤 ‘두려움’이 변명이거나 환상이었음을 깨우쳐 가면서, 진실한 독립이 시작되리라.

단보 선생께서는 ‘겁’의 문제에 있어서, “결국에는 한번 마음의 경계가 바뀌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지평이 생긴다”라는 공부의 소식을 들려주셨다. 그러니 이 문제를 ‘탈식민성’과 같은 또 하나의 담론으로 만들기보다 직입해서 자기 존재, 자기 마음을 걸고서 넘어가는 시도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는데, 나 자신은 이론가도 연구자도 아니지만, 자기구제의 공부길이 담론과 소통하고 있으니, 어떤 태도를 정립(正立)해 가는 일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생활인이며 학인이라는 이름이 결코 작지 않다. 그 무엇과도 상대할 수 있는 〈실력〉 앞에 공평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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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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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강에서는 레비나스, 알키에, 하이트, 앙지외를 다루었다. 물론 그들은 단보선생님의 프리즘을 통해 해석된 개념적 형상으로 제시된 것이고, 다시 나의 문제의식의 벡터 속으로 배치되었으므로 내가 얻은 것은 삼각측량법(triangulation)을 통해 탐지된 나의 질문일 것이다. 네 명의 서양 사상가, 단보선생님, 그리고 나의 문제의식, 그 삼각형의 가운데에 꽤 개연적인 곡두처럼 놓인 것이 바로 개별과 보편의 문제였다. 하이데거와 레비나스가 ‘다른’ 산일 수 있는 것, 혹은 버틀러와 지젝의 논쟁을 공연한 것으로 탐지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애초 보편이 아니라 ‘개별자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알키에는 개별 그 자체의 행보 속에서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려 하고, 하이트는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도덕적 통합’을 보편적 타협 지점으로 발견하려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어쩌면 개별자들을 개별자들 그 각각으로 다룰 수 없는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개별자와 개별자가 ‘만나면’, 반드시 그것을 매개하는 범주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레비나스의 존재자는 물론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하이데거의 존재는 타자를 내포하고 있고, 레비나스의 존재자는 타자를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젝이 탐지하는 주체의 근원적 결여는, 버틀러에게는 단지 사회적/수행적으로 지정된 자리에 불과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무엇이 ‘맞는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범주의 게임이 벌어지고, 그 게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개별을 보편으로 가장한다(pretend).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 관한 무언가를 느낀다. 대학에 있으면서 장숙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는, 장숙이라는 개별과 대학이라는 개별 사이의 관계를 확정하려 한다. 나는 단순히 이 산으로 갔다가 저 산으로 갈 수 없다. 그것들은 내게 하나의 산이어야 한다. 때때로 둘은 매우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때때로 그것들 사이는 너무나 멀어서 하나의 길을 낼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아아, 필생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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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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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알키에는 '한 명의 철학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어떻게 철학자가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인격과 사상이   통합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체계 속에서 보편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울지라도 인격을 아우르는 사상은 달리 작동할 것이다.
장숙강에서 사상가에 관한 강의가 네 번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사상가에 대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인간과 세상을  잘 알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조각난 지혜를 통합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지혜와 지식을 섭렵하기 위함이라고 단보선생은  말씀해 주셨다. 
종교나 정치 또는 사랑을 진짜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연극적 실천이어야 한다고 단보선생은 말씀하셨다. 애착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서로를 돕는 식으로 운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공부도 정신의 진화에 복무하는 방편이고 우리가 행하는 일련의 패턴으로,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단보 선생은 인생 전체와 죽음 이후까지도 생각해보며 가장 유익한 실천이 무엇인지를 묻는 자기구제의 공부를 말씀하셨지만 우매한 나에게는 눈앞의 삶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다. 이론을 바탕으로 생활 가운데서 생성되는 개념을 배우고 익히며  그것을 토대 삼아  한 걸음, 한 호흡을 정성껏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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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ㄷ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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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자체는 피할 수 없어. 실수와 사건은 피할 수 없어. 그건 무시해야 해. 그건 항상 생겨요. 실력이 좋은 사람은 오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오해가 발생했을 때 해명을 잘하거나 잘 참아내거나."<장숙강 60회, (영원한)자기소개 中, 단보 선생>


대학교 2학년 때 <말>지에서 4주간 문성ㄱ, 최민ㅎ, 손석ㅎ, 유시ㅁ씨가 하는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홍보 없이 알음알음 소개로 진행했던 행사라 매주 6~8여 명의 사람이 작은 교실에서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인원이 적은 강의에서 매번 질의응답 때마다 누가봐도 프락치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준비해 온)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매번 그 사람의 질문으로 분위기는 싸해졌고, 어떤 강의자는 똑같이 비아냥으로 되갚아주었고, 또 다른 사람은 민망해하며 화제를 돌렸고, 누군가는 살짝 흥분하며 답하기도 했다. 질문도 답변도 내용은 전부 잊어버렸는데, 나머지 세 사람과 달리 손석ㅎ 씨의 대응이 그 인상만큼은 오래오래,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기억으로는, 상대의 무례하고 저급한 말에도 감정적 동요 없이, 당황도 없이, 괜스레 상대에게 반격하면서 자신마저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지도 않으면서도, 동문서답하지 않고 아주 잘 대답하여, 상대를 심지어 반성할 뻔(?)하게끔 했다는 감상만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 장숙강에서의 실력에 대한 단보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자기 개입의 자리를 놓치고 실력이란 개념을 자칫 잘못 사용했다간, 저 강연자들도 '수준 떨어지는 사람 앞에서 강연했다'거나 '저급한 질문을 받았다' 식으로 자신의 응하기를 회고할 지 모른다. 그런데 웬걸, 그 프락치가 아무리 수준이 떨어진들, 질문이 저급한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어쨌든 누군가(손석ㅎ)는 그 어려운 게임에서도 끝내주는 연극을 선보인(였)다. 아무래도 "실력은 [역시] 응하기"(단보 선생)다.



"운이 나빠도 살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해요."<장숙강 60회, (영원한)자기소개 中, 단보 선생>

"대개 서양은 자기 구제 방식은 너무나 분명하죠. 예수 믿으면 됩니다. 초월적인 신을 만나면 됩니다. 이건 뭐 타자를 만나면 된다, 그런 말이겠죠. (중략) 근데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식의 구제가 없습니다. 동아시아는 구제하기 위해 메시아를 찾지 않거든요. 자기 수양이나 자기 수도 전통이 세기 때문에 자기를 돌아보거나 깊이 보는 식으로 훈련을 찾는 거죠. (중략) 나 같은 경우엔 내부의 가능성을 자기의 일상적인 생활양식과 결부하여 길을 내려는 사람의 일종입니다." <장숙강 60회, 15. 레비나스, 타자를 위한 존재(L'être-pour-l'autre) 中, 단보 선생>


"공부하는 사람이 윤리가 없다는 것은 체계에 복속된 것"이니 자신만의 노동의 실천이 축적된 윤리를 발굴해야 한다. 그런데 "윤리는 지속적인 실천으로 마침내 얻어내는 것"이며, 그렇기에 윤리는 자신만의 비용을 반드시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 비용은 "자기 생활양식을 갖고 만드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공부의 밑절미는 생활이다. 장숙은 무엇보다 "생활양식파"다. 그렇다면 생활을 야무지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 정치, 종교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자기를 깊이 사랑하고, 꾸준히 사랑하고, 하염없이 사랑해야 [하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야 [하고], 내가 나를 미워하지 말아야 [하며], 힘이 그래야 나오고, 내가 모르는 창발성이 나오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기를 키우는 공부를 하면서 자기의 자득에 대한 조바심을 없애야 하고,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설령 100대 0 과실의 뺑소니를 당해도, 원망할 시간에 어떻게 잘 자빠질지, 어떻게 잘 회복할지를 고민하는 게, 어차피 지나간 사고를 부여잡기보다 "(당신의) 머릿속에 흘러가는 강물 하나를 가지고 있(어라)"(미야모토 무사시, 속속 209회 中)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태도다. 남이 내 공부를 방해하는 걸 염려하기보다 내가 내 공부를 방해하지 않도록, "이 못생긴 자기를 하염없이 사랑해서, 통합의 힘으로 엔진을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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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ㅇ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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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숙강 자기소개 시간에 단보선생께서 응하여 말씀해 주신 것 중에 도덕과 윤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싶다. 요즘 속속과 장숙강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도덕과 윤리에 대한 말들이 종종 들려와 관심을 더 두게 되었다. 단보선생께서 말씀하시길 도덕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새롭지도 않고 신통하지도 않는, 자기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 하셨다. 반면에 윤리는 자기가 지속적으로 실천해서 마침내 얻어낸, 약간 귀한 것이고 자기 생활 양식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라 하셨다.
자신의 윤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나라는 사람을 단순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일 같다. 융통성을 갖추는 일 같기도 하다. 주어진 도덕을 그대로 외워서 지키며 사는 일은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윤리는 우선 주어진 도덕에 대해 '왜?'라는 질문부터 해보아야 하는 일 같다. 왜 그 도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주어진 상황에 맞게 나름의 해석을 하여 선택한 바를 실천해 보며 갖춰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선택의 시행착오를 통한 사건들로 내가 다채로워지는 일 같다.
단보선생께선 지난 속속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도덕에 운운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어떤 윤리를 가지고 살 것인가?' 이 질문을 꾸준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  *   *

숙인 박ㅇ름씨가 찍어 준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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