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室'' essay_ 글쓰기와 자기이해
‘안(內)’이라는 주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험들을 ‘밖(外)‘으로 내어 표현한다는 것은 끝없는 낯부끄러움과 자기저항에 부딪친다. 그 오도 가도 못하는 형상形象 속에서 벼려지는 것들은 존재의 주관적 세계를 자극하고 ‘다시’ 자신을 알게 한다.
어느 책인가에서 남성은 상징을 만든 존재이지만 여성은 상징을 만들어내지 못한 존재라고 했다. 글쓰기를 하며 부딪힌 어려움 혹은 저항이라는 것의 실체를 파고들어 만난 첫 번째 허무가 그것이었다. 그것은 상징 없는 존재가 글쓰기를 하게 될 때 만나는 자기이해. 함께 사는 남성(남편)은 내가 공부를 시작한 동안 멀리 해외에서 장기해외출장 중이었다. 5년여를 3개월에 한 번 만나던 남성은 긴 장기출장을 마치고 집에 기거起居하게 되었다. 남편이 출장 중 이었던 때 나는 ‘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부자리에서 만난 말들은 공부 이전에 갖고 있던 말의 한계로 인한 상처를 자정自淨 하게 하고, 한정된 상징으로 탈출구 없던 사태들을 해체시켜주었다. 그것은 이 사회의 자본주의,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약자로서의 상처들이었고 억압이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새로운 말(상징)을 배운다는 것이다. 배운 말들, 특히 말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의 개념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 말을 배운다는 것은 가부장제 안에서의 여성이라는 상징을 해체 시키고 자본주의 안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던 실체를 보게 만든다. 그런데, 없던 가부장이 집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배운 말과, 십 수년 몸에 배인 말들 사이에서의 버성김이 시작되었다. 아직 채 몸으로 내려앉지 않은 익히고 있는 말들과 여전히 잔존하는 예전의 말 사이를 불안으로 내보이는 버성김. (어느 쪽에 먹이를 더 줄까?)
몸의 어느 한 구석이 아프지 않은 이상 내 몸의 장기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지 못하듯, 막힌 글쓰기 속에서 왜 글을 쓸 수 없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생물학적 한계이자 가능성으로서의 나는 아직 상징을 만들지 못한 존재였다. 말을 다시 배우기 이전以前에 살던 상징계에서, 알지도 못하는 새 성폭행당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것일까? 상징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주체가 될 수 없었다는 것, 그 자체로 상처이더라도 상처라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겪던 허무가 상징 없음의 표정이었다는 것이 까발려진다. 명예남성도 되지 못하고 남성이 만들어놓은 무언가도 되지 못하고, 그것들 아닌 또 다른 무언가도 되지도 못한 채 웅크리고만 있던 한 여성이 드러난다. 그것이 왜 글쓰기를 통해서 였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글쓰기를 하며 마주친 첫 번째 자기이해는 상징을 만들지 못한 존재의 , 존재가 되기 위한 ‘말’을 품고자하는 몸부림이었다.
허실의 '왜 글을 쓸 수 없었는가'라는 자기 내파(內波)의 질문과 자기이해의 과정이 공유될 때,
'주체'를 넘어 '존재가 되기 위한' 몸부림 또한 전염이 되는 듯 해요.
"Dis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Wittge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