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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시독 시간에는 李穡(1328~1396)의 아래와 같은 문장도 배웠습니다.
글 쓴 사람이 자기 가까이에 있는 사물과 눈 들면 보이는 풍경의 아름다움으로부터 글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한문문장의 질을 따지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이 한문글이 풀어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저도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선생님도 과연 李穡의 문장!이라고 찬탄하셨습니다.
雪也在孤舟簑笠爲益佳, 月也在高樓樽酒爲益佳。風在釣絲則其淸也益淸, 花在書榻則其幽也益幽。四時之勝各極其極, 以經緯乎江山之間。敬之氏待側餘隙, 舟乎江屩乎山, 數落花立淸風, 踏雪尋僧, 對月招客, 四時之樂亦極其極矣。敬之氏其獨步一世者哉!
李穡(1328~1396), 『(牧隱文藁)』 券3 「(六友堂記)」
눈(雪)은 도롱이 두르고 삿갓 쓴 사람 탄 배 한 척 있는 곳에서 더욱 아름답고, 달(月)은 높은 누각의 술 담긴 통에 떠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바람(風)은 낚싯줄에 걸릴 때인 즉 그 깨끗함이 더욱 깨끗하고, 꽃(花 )은 책과 책상 있는 곳인즉 그 그윽함이 더욱 그윽하다.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는 각각으로 극짐함을 더욱 극하고, 이로써 江山之間을 짜는 씨실과 날실이구나. 경지씨(敬之氏)는 부모를 모시고 남은 틈에 강으로 배를 띄우고 짚신 신고 산으로 걸어다니다, 떨어지는 꽃잎을 세고 서서 깨끗한 바람을 맞고, 눈을 밟고 중을 찾아갔으며 달 뜨면 손님을 초청하였으니, 사계절의 즐거움이 그 지극함을 더 극했다. 경지씨야 말로 이 세상을 홀로 걸어간 자가 아니겠는가!
(본문에 보이는 ‘경지(敬之)’는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의 자(字)다. 그는 우왕(禑王) 초기인 1375년 북원(北元)의 사신을 물리칠 것을 주장하다가 이인임(李仁任)에게 배척을 당해, 지금의 죽산(竹山)인 죽주(竹州)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여흥(驪興)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이때 그는 강・산・눈・달・바람・꽃과 벗하면서 육우당(六友堂)을 짓고 한가롭게 살았다. 그러다 1381년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으니, 「육우당기」는 이 어름에 지어진 작품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 왼쪽 사진의 액자를 자세히 보면 “어긋냈기에 알았고 어울렸기에 되었으며 살았기에 아름다운 곳” 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