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율아, 왜 언니들이 서율이랑 방을 같이 안 쓰려는 것 같아?”
“음... 내가 더럽게 써서?”
책상 셋이 나란히 함께 사용하던 방에서 제일 먼저 큰언니가 나갔고, 얼마 안 되어 둘째 언니도 침대 방으로 옮겨갔다. 서율이는 ‘정리 안 하고 지저분하다는 죄’로 가만히 앉아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머잖아 이 일의 엉뚱함을 눈치챈 언니들은 서율이를 닦달했고, 죄지은 자가 책상을 옮겨 나갈 것을 종용하였다. 그렇게 언니들은 각자의 방을 얻었고 그렇게 서율이의 책상은 아빠 서재 한 켠으로 옮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전히 흐트러져 있는 서율이의 책상을 보며 ‘얘 나름의 질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이해의 시늉을 하다가, 책상 모퉁이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는데...
>>1. 내가 어지른 것 청소하기
2. 내가 청소하다가 나가지 않기
3. 자기 물건 잘 챙기고 잘 정리하기
4. 자기 자리에 두기
5. 할 거 하고 놀기
6. 정리 하루에 10분씩 아니면 5분씩 정리하기
7. 놀지만 말고 정리하기
8. 숙제하고 놀지말고 정리하고 하기
9. 물건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기
10. 자기 물건 없나 살피기
(뒷장)
>> 안 하면 쫓겨나요
방에서 내쫓긴 일이 서율이에게 비평이 된 것일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
그녀의 십계와 여전히 흐트러진 책상의 간극은 어떻게 극복 될 것인가?
*이 아이의 10계를 일람하면, 70% 정도가 결국 '정리하기'로 귀결되거나 이와 관련된다. 물론 이런 분석 자체가 이미 '어른의 것'이다. 모든 분석은 범주와 개념의 '놀이'이므로, 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필경 다른 범주(categories)와 개념들로써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실천인 셈이다. 그러므로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이 모이거나 나뉘는 낯선 방식들을 향해서 육박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