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기소개에 대하여>

 

*

속속 공부의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장숙의 개숙식에 초대받았을 때 손님이지만 역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식으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까지 해왔던 자기소개를 떠올려보았다. 주로 취업을 위한 이력서(履歷書)에 필요한 자기소개였다. 성장과정, 학창시절, 가족관계 등, 살아온 시간과 살면서 맺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과거로부터 현재로까지 이어지는 발자취(履歷)와 앞으로의 다짐을 곁들였던 자기소개였다.

 

*

자기소개는 자신에 대한 자신의 재서술(redescription)이다.

이후로 계속된 자기소개는 내 안에 끊임없는 질문을 불러왔다. 공부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작기 자기소개를 맞이했을 때의 몇 번의 당황스러움은 점차 자기소개를 준비하게 했고, 때로는 글로 써서, 때로는 마음속으로 자기소개를 준비했다. 2주간의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나 사건들을 말할 때도 있었고, 학인으로서의 나의 생활을 반성할 때도 있었고, 그냥 단지 2주간의 느낌에 대해, 속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질문이 끊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말로 구성된 사람인가? 나의 자기소개는 지금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나는 변화에 집중하고 있는가, 과오에 집중하고 있는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내가 재서술하고 있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 속에 그려지는 미래의 나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인으로서 자기소개를 공부의 형식으로 가져간다고 할 때 나는 그 의미에 맞는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가? 자기소개라는 형식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

물음은 물음의 수행 그 자체가 새로운 공부 길을 열어낸다. 좋은 물음은 새 문을 열어내고(賢問開門), 절실한 물음은 삶을 문제시(切問近思)하듯이 자기소개를 통해서 만나는 물음은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공부하는 학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공부였다. 속속을 떠나 잠시 방학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가끔 속속을 떠올리며 속으로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비록 혼자 하는 자기소개였지만, 속으로 해보는 자기소개는 타인을 배제하는 속성에 있는 자기-생각이라는 틀 속에서 나와 다시 말해, 나의 생각에서 나와 너의 사실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자기소개를 통해서 나는 바깥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영원한 자기소개

공부자리에서 나의 자기소개의 주제는 나는 왜 공부하는가’, ‘왜 나는 공부자리에 있고자 하는가이다. 매 공부모임마다 공부를 준비하며, 공부자리에 앉아서, 내가 여기 있는 이유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환기한다. 과거에 얽매인 내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 조건에 매몰된 내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그 질문, 그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재서술하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2 Childhood Abuse Led Woman To Long Life Of Promiscuity 1 찔레신 2019.12.12 99680
291 Girlfriend Learns The Secret Behind Man's Cheap Rent 2 찔레신 2019.11.29 38378
290 The truth about my refrigerator, Kimchi/ Carla Lalli Music 2 file 찔레신 2020.05.07 35833
289 Man's Explosive Anger Causes Concern For Easygoing Fiancee 1 file 찔레신 2020.01.16 21437
288 How the Coronavirus Can and Cannot Spread/ <New York Times> 1 찔레신 2020.03.06 11717
287 건축가 박진택 1 file 진진 2018.11.11 2100
286 虛室'' essay_5. 성, 사랑, 인간을 공부하며 느꼈던 소회(송년회 별강) 허실 2020.01.15 1276
285 절판된 책 제본신청 (그리고) 30 file 희명자 2021.01.31 1014
284 (속속) 연극성(Theatricality)과 진정성(Authenticity) 榛榗 2020.02.26 789
283 전통, 그 비워진 중심_'세 그루 집'(김재경) 평문 file 榛榗 2020.03.11 562
282 7살 서율이 3 file 형선 2018.10.13 549
281 虛室'' essay_3. 글쓰기와 자기이해 2 허실 2019.12.03 544
280 踏筆不二(17) 존재(Sein)와 당위(Sollen) 1 지린 2020.09.03 505
279 119회 별강<장숙에서의 공부가 내 삶에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 簞彬 2022.01.05 481
278 <84회 별강> 2년 6개월 공부의 성과와 위기 1 懷玉 2020.09.03 479
277 學於先學 3_ 茶山 丁若鏞,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肖澹 2021.02.17 474
276 花燭(화촉) file 형선 2019.06.20 463
275 踏筆不二(23)-깨진 기왓장과 넝마 지린 2020.11.03 417
274 통신표(2022) (1-5/계속), Tempta Iterum ! 찔레신 2022.01.06 409
273 낭독적 형식의 삶 9 file 는길 2023.01.31 40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