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7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극성과 진정성, 얼핏 보면 서로의 반대말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극성은 현실과 유리되거나 거짓됨을 의미하는 반면, ‘진정성은 진짜 혹은 진실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양극단의 이념을 자신의 현실 속에서, 생활양식 속에서 하나로 융통하여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도끼를 둔 망나니 앞에서 자신의 짧은 목을 조심히 내리쳐달라던 토마스 모어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죽음에 이르러 보여준 단편적인 사건으로 그들의 삶을 예단할 수는 없다. 그들의 진정한 삶은 마지막 순간에까지 이른 지난한 연극으로 완성되었고, 일관된 연극적 실천은 그들의 온 생애를 반추하는 빛이 되었다. 위대한 죽음이 현시하는 것은 이런 완전한 삶이다.

  연극적인 삶을 실천해보는 하나의 예로 라디오 극을 해보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의 가면을 쓰고 목소리 톤과 세기를 바꾸며 타자가 되어보는 연습이다. 쑥스러움은 잠시 뿐, 목소리를 바꾸며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유대교 사제, 가야파가 되어 예수에게 죄를 묻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예수가 되어 그의 침묵에 동참해 보기도 했다.

  끊임없이 이동하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주체가 자신을 옥죄던 그 형식을 넘어 자기화하는 지경, 궁극의 연극적 실천이 상도해야 할 자기 구제의 길은 내 이웃을 향한 동시 구제의 길이기도 하다. 옆집에 사는 예수도 알아보지 못하는 세속이지만, 이런 세속의 야속함마저도 비워내고 내 의도의 밖으로 나오려는 근기있는 연극적 실천이야말로 진정으로 타자를 돕는 길이자 공부의 본령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2 < 86회 별강> 타자, 그 낯섦의 구원 해완 2020.09.25 143
291 <107회 별강 > 1 해완 2021.07.22 207
290 <82회 별강> 여자의 말을 배운다는 것 燕泥子 2020.08.01 187
289 <83회 별강> 능력주의 신화는 아직도 진행 중? 冠赫 2020.08.14 191
288 <84회 별강> 2년 6개월 공부의 성과와 위기 1 懷玉 2020.09.03 479
287 <89회 속속 별강> ‘約已, 장숙(藏孰) 가다’ 약이 2020.11.12 272
286 <90회 속속 별강> 말(言)을 배운다 侑奏 2020.11.27 179
285 <91회 별강>집중에 들어서다-낭독하는 삶 효신 2020.12.11 163
284 <藏孰> 천안시대, 晦明齋를 열며 2 file 찔레신 2019.07.11 335
283 <동무론>, 전설의 책 ! 3 file 찔레신 2022.10.04 334
282 <장숙>, 2023년 (1-3) file 찔레신 2022.12.26 255
281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청라의 독후감 1 찔레신 2023.01.03 298
280 <적은 생활...> 서평, 중앙일보 양성희 기자 찔레신 2022.12.12 180
279 <조선, 1894 여름> 의제 지린 2020.07.30 55
278 <최명희와 『혼불』제1권> 발제문을 읽고 2 file 는길 2024.03.29 115
277 <틈셋학교>를 연기합니다, file 희명자 2020.02.21 293
276 '글쓰기'라는 고민 해완 2022.01.05 397
275 '밟고-끌고'의 공부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lector 찔레신 2023.02.05 121
274 '실력 있음"이 죄가 될 때 1 해완 2020.06.24 163
273 (155회 속속 硏講) 가장자리에서 지린 2023.06.10 19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