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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kaoTalk_20240329_122513952.jpg



최명희는 바로 그러한 것의 집산체(集散體)입니다. (중략) 그네는 근원을 알기 위해 아마도 현대의 자아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혼불을 통하여 자신을 수복하였을 것입니다.”

 

혼불 전권은 17년간 쓰였고 작가는 그중 8년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고 했지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8년이라니, 그러한 시간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잠시 먹먹하기도 막막하기도 하였습니다. 작가에게 생긴 존경의 내력에는 단연 그가 버티어 수복한 시간성이 개입하고 있는 듯했어요.



- 아마도 혼불을 읽은 모든 이는 그곳에서 곡진하게 묘사되고 불려내어진 모든 사물들과 이름들에 대하여 예전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좀체 소설과 가까워지지 못한 몸이었는데, 이번 독서를 계기로 조금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곡진한 묘사가 정말 곡진하게 섭동을 일으킵니다. 서사에 대한 관심이 독서를 부추기는 것도 맞지만, 목적지나 결말이 그리 중요해지지 않는 독서도 있는가 봅니다. 오롯한 읽기의 현장성을 일깨운다고 할까요. <‘이야기됨의 아름다움에 이야기성의 정신을 거는 이야기>라는 말을 새겨두었어요. 언어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걸 수 있다는 것, 왜 문학을 인문학(人紋學)의 정수(精髓)라고 하는지, 한 줄기 이해가 생겼습니다.

 

 

최명희에게 근원을 찾는 길은 모국어로 각인(刻印)되어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모국어의 무늬를 만지지 않고는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낯선 모국어가 무수히 등장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전으로 향합니다. 각단지다, 순후질박하다, 낫낫하다, 음전하다 등. 낯선 낱말을 옮겨 적고 음미하며 만지작 만지작. 그러면서 언어 게임은 생활 속에 내려와 있다는 비트겐쉬타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낱말을 주고받았을 생활, 표정, 사람에 관한 상상으로 옮아갔지요. 그렇게 잃어버린 인간성이 되살아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지난 서숙 강연을 기점으로 전통과 절맥된 우리네 정신문화의 불우함을 인식하고 있던 터라, 망실되고 있는 우리말을 찾아 사용하는 일이 그것을 보완하는 작은 실천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가 언급한 근원(根源)이란 무엇일까요.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이 생()과 사()의 순환 속에서 오래 반복해온 것, 삶의 압력을 받으며 응축되어 근저(根底)로 밀려나-밀려나 무의식의 지층을 이루고 있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근원(根源)’이라는 시선의 방향이 낯설게 다가와 타자성의 진동을 주고 있어요.

 

 

평순네, 옹구네, 곰배네는 거들치마와 두루치를 입은 밭의 신부들입니다.”

 

소설 초반 혼례 예식에 대한 장면에서, ‘이 집의 안팎은 며칠 째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문장이 등장해요. 저도 모르게 들뜨더니 어디선가 전 지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고요. 명절이면 적적한 시골에 일가친척들 모여들고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던 다복한 풍경이 호출되었습니다. 소설에서도 혼례 예식에 앞서 대대적인 음식의 향연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 풍족함으로 미쁘게 전이(轉移)되더랍니다. 지혜로운 이는 장례식장에 마음을 둔다고 하던데, 저는 잔칫집에 환호하고 있어요. 다만, 이 향연의 연출가로서 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밤이 깊어지도록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들고 나르던 손과 손들을 향하여 삼가 존경을 표하고 싶어요. 다홍치마를 입은 신부의 손은 어떠했을까요. 다잡아도 자꾸만 떨렸을 것 같고, 소복을 입은 신부의 손은 온기를 잃고 서늘하게 굳어졌겠지요. 밭의 신부들의 손은, 조심스레 다가가 살며시 포개고 오래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쾌락 소비자로 회귀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가지고서 그네들을 마주하자니 염치가 없습니다.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살라고 주어진 삶(신랑들의 不在)을 운명으로 엮어 직조해 내는 그네들. 삶의 낮은 자리에 착근하였던 그네들의 혼()이 저에게서 혼불 ‘꽃심으로 지펴지도록 부실한 내면을 살찌우고 벼리는 과정에 거듭 들어서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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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 2024.03.29 19:37

    "아무래도 쾌락 소비자로 회귀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가지고서 그네들을 마주하자니 염치가 없습니다.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살라고 주어진 삶(신랑들의 不在)을 운명으로 엮어 직조해 내는 그네들. 그네들의 혼(魂)이 저에게서 ‘혼불’로 ‘꽃심’으로 지펴지도록 부실한 내면을 살찌우고 벼리는 과정에 거듭 들어서야만 하겠습니다." - 독서하는 데 염치를 챙길 수 있다면 그 또한 내면을 살찌우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는길에게서 '현대인으로서 혼불을 읽는 마음의 염치'를 배웁니다. 잘 읽었습니다. 

  • ?
    는길 2024.03.30 11:28
    ‘하고싶은 말’ 보다 ‘해야 할 말’에 초점을 두고 준비하였다는 유재의 발제문도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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