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8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중앙일보

입력 2022.11.28 00:29

지면보기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내가 존재, 그러니까 무(無)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내가 ‘사람’이 된 날이었다. 무의 아우라가 없는 것은 아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기 전인 것은 확실하지만, 4살이었는지 혹은 6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을 걷고 있었고, 그 사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청명한 야밤으로 별들이 많았다. 죄다 익숙한 존재물로, 바로 이 ‘존재라는 틈’의 틈입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할 일이 없는 범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무’, 무의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어머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없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절절하고 공포스러운 체감이었다, 존재의 틈으로 무가 번개처럼 찾아들던 순간이었다.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날이었다. 내게 ‘영혼’이 생긴 날이었다.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제도권 대학을 떠나 30년 가까이 인문학 공동체와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철학자·시인 김영민의 책이다. ‘무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이라는 제목의 윗글에 저자는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팡세』의 문장을 달았다. ‘공부의 철학자’로 유명한 저자는 수행자처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에게 공부란 “매사에 진짜를 구하는 애씀” 혹은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고, 그 덕으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사는 일”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72 여성 file 형선 2019.03.13 194
271 방학 file 형선 2019.03.27 181
270 다시 기억하며 file 형선 2019.04.10 151
269 들을 수 없음 1 file 형선 2019.04.25 203
268 부재(不在)하는 신 1 file 형선 2019.05.22 209
267 정체성과 수행성 2 file 형선 2019.06.05 238
266 花燭(화촉) file 형선 2019.06.20 463
265 <藏孰> 천안시대, 晦明齋를 열며 2 file 찔레신 2019.07.11 335
264 惟珍爱萬萬 3 燕泥子 2019.07.18 261
263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관한 불편함 1 燕泥子 2019.07.31 201
262 Dear 숙인, 10 file 형선 2019.08.06 333
261 동시 한 편 소개합니다 1 遲麟 2019.09.30 127
260 진실은 그 모양에 있다 file 遲麟 2019.10.02 120
259 Do not be surprised if they try to minimize what happened/ Abigail Van Buren on Oct 2, 2019 1 찔레신 2019.10.03 141
258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에 대한 단상 9 허실 2019.10.07 270
257 踏筆不二(연재예고) file 遲麟 2019.10.13 137
256 낭독일리아스_돌론의 정탐편 1 허실 2019.10.17 122
255 踏筆不二(0) 2 遲麟 2019.10.22 129
254 踏筆不二(1) 3 file 遲麟 2019.10.24 165
253 도로시(道路示) 8 file 敬以(경이) 2019.10.29 18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