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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室'' essay_ 그 사이에서

 

'냉소'와 '알면서 모른체하기' 사이

'현명한 개입'과 '나르시시즘의 연장' 사이

 

 

무지의 상태란, 어떤 언어의 부재 혹은 어떤 식의 부유.

내 몸에 있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부재한 말이 무엇인지도 알 길 없음.

말 없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나 없음의 상태.

 

 이전의 존재방식과 다른 길을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익숙하게 작용하던 시냅스의 길, 리비도의 길, 제 심리의 길을 알게 될 때 생기는 틈.

그 틈,  새로운 말이 몸에 얹혀 더 이상 부유하지 않게 붙잡을 토대가 생기는 것.

비로소 선택이란 걸 할 수 있게 되는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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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敬以(경이) 2019.11.12 18:46
    증상이란 것은 돌아가고 싶은 어떤 것 일것 같아요.
    이전의 존재방식과 다른길을 가게 된다는 것은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일까 하는생각을 해봅니다..

    비운다는 것은 억압도, 증상에게 '돌아갈수 없음'을 이해시킨 어떤 것일수있을까요?

    그렇게 나자신의 꼴을, 증상을, 억압된 분노를, 옮기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또한 불천노(不遷怒) 일수 있을까요?

    - 집중과 영혼 240~242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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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우젠 2019.11.15 02:19
    ‘틈’이 열어준 ‘길’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너무 쉽게 돌아가고 말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지지부진한 상태로 멍하니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나를 만나요. 예전에 숙인 중에 ‘선택하는 여자네요.’라는 말을 산책하다 들려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토대’라는 말도 새로운 말로 다가와요.
    누군가 내 토대가 되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