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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일 속속(41)


41회도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을 다루며, 6, 7, 8, 9, 11, 12, 13장을 발제와 강의, 그리고 조별토의로 끝마칠 예정입니다. (반장은 발제자를 배분해서 미리 준비시키기 바랍니다.) 교재에 들어가기 전 에드가 엘런 포의 <군중의 사람>을 잠시 논급합니다. 역시 당연하지만, 모든 논의는 르네 지라르의 논지, 그리고 이번 학기의 주제(모방-인정-물화)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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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遲麟 2018.11.21 00:26

    현소자, jjj, 영도, 형선, 장js, 양ㅂㄴ,하람, 시란, 박ㅇㅇ, 지린, 이ㅈㅇ, 연니자, 김ㅎㅅ, 진진, 토우젠, 오ㅅㅇ, 이ㅇㅇ, 허ㄱ, 등 모두 18명의 숙인(孰人)이 참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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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遲麟 2018.12.03 22:31
    41회 속속 후기

    *君子豹變(군자표변)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군자는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표범이 털바꿈을 하듯이 그것을 바꾼다는 뜻으로, 군자는 표변하지만 대중은 표변하지 못하며, 개인은 이동할 뿐이고, '일관성이 영웅적이다'(니체)고 배웠습니다.

    *"마지막에는 몰락하는 것들과 함께 해야 한다. 몰락하는 가치에 나의 눈높이를 맞추고, 몰락하는 가치들에 주목해야 되는 것이다."(k님)

    *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저녁식사는 아주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카레와 미역국은 특히 맛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두어 모금씩 마셨던 茶도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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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연 2018.12.04 18:07
    ‘대중은 진리를 향한 열정으로 오류를 범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나온 삶 속에서 그런 대중의 가능성을 사랑했고, 믿었고, 함께 하려 했습니다.
    분임토의 속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질문이 남았습니다.
    ‘대중은 주체로 설 수 있는가’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대중인가?’
    모방적이며, 무반성적이며, 흘러가는 것이 대중의 모습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대중의 모습으로 머물지는 않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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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물시 2018.12.05 00:44
    Das Ganze ist das Unwahrheit.(전체는 거짓이다)
    참(진짜)은 전체가 아닌 개인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신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일상에서 매사에 몸에 집중하고 관찰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몰락한 가치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장숙에는 몰락한 가치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고 서로 애쓰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옆에서 숙인들의 공부를 모방하므로 제 자신이 표변은 못해도 조금은 바뀌겠지요.
    저녁 참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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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진 2018.12.06 11:06
    1. 詩讀
    저녁시간이었다. 지린, 시란, ㅈㅇ님은 앞서 있었던 시독 시간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화 속 내 주목을 끈 것은 그들의 공통 경험인 ‘찌릿함’이었다. 찌릿한 순간 속에서 시를 매개로 그들 고유의 세상을 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찌릿함을 느낄 수 없었던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내게 ‘시’란 먼발치에서 바라본 타자의 소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모든 성취에는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며, 나를 위로하고도 다잡았다.
    2. 공부는 직관적인 밸런스(balance)
    선생님께서는 ‘공부는 직관적인 밸런스’라 말씀하시며, 다소 이상한 유추라 생각하겠지만 공부와 윗몸일으키기가 연관될 수 있다고 하셨다. 내겐 이 이상한 유추가 낯설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내 건축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한동안 쉬고 있는 나의 실무 때문이 아니라, 내 빈곤한 언어 때문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3. 내 생활을 문제시 하지 않은 독서는 아직 독서가 아니다.
    텍스트를 읽고 발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별 토의를 진행하며, 내 생활을 문제시하지 않은 독서와 의제 설정이 제대로 된 논의의 지평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공부가 내 몸을 이끌고 타자의 지평으로 들어가야 하는 수행이듯이, 독서 또한 저자가 구성해 놓은 세상 속에서 내 생활의 문제를 연동시켜 봐야 하는 것이다. 내 생활을 반추해볼 제대로 된 의제하나 제시하지 못하는 독서는 아직 독서가 아니다.
    4. 순간의 의심 속에서도 영혼은 오염될 수 있다.
    선생님께서 소문에 염착(染着)하는 대중의 속성을 말씀하시며, 소문에 기우뚱한 것도, 살짝 흔들린 것도 영혼이 지옥에 갈 수 있는 사건이 아닌지 반문하셨다. 수많은 소문과 에고의 꼬드김을 견뎌내고, 마침내 의심의 미동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한 사람의 영혼은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5. 공부는 불편함을 공대하는 일
    선생님과 함께하는 공부는 불편함을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과 관념들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은 그 절정의 꼭지다. 아래로부터의 개혁, 소시민(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내게 커다란 고민을 안겨 주었다. 내일 만나게 될 대중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