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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11:51

行知(11) 매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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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


 


모방과 전염을 피할 수 없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치우치거나 경도되기 쉬운 게 우리네 일상이다. “남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나쁜 건 발효시켜서 퇴비로 만든다라는 말을 들려준 이가 있었다. 다투어 흔적을 남기고 얼룩지는 세속에서 다른 순환을 만들려는 의욕으로 읽혔고 나도 그 말을 시도해 본다. 중간 결과를 말하자면 실패. 일정 기간 참고 품어야 퇴비가 될 텐데 내 것이나 남의 것이나 배설된 것의 물질성과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사람 되기를 포기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처럼. 성격이 나빠서 그렇단다. 기질에 맞게 변용한 방식을 찾는 중인데 사람이 되기 위해 칼을 품었던() 곰은 언제나 힘이 센 모델이시다. 아무튼, 이런 시도도 저런 실패도 얼룩지고 어긋나는 세속에서 조금 더 나은 순환(관계)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이겠고,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관심을 증폭시켜 왔다.

관계의 문제에 천착하게 한 사건이 있기는 하다. 원망의 대상이 된 일. 돕는다고 덤빈 일에서 속수무책 미끄러진 일이 있었다. 전에 없던 실패였지만 반복의 형식을 부정할 수도 없다. ‘개입의 윤리로 묶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로서 실력을 키우는 길을 선택한 데에는, 그렇게 스러져간 관계의 빚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해 혹은 서사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문제는, 원망의 대상이 된 내 쪽에서도 생겨나 없어지지 않는 작은 원망. 에너지가 많이 투여된 일일수록, 보상의 문제에서 스스로를 구제하는 일이 따라붙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우발적으로 생겨나듯이 또 의외의 지점에서 풀리기도 한다. 이런 식이다. 최근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겼는데 이 앎이 고수(固守) 하고 있던 과거의 일에 스며든 것이다. 언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의 일이 떠올랐고 여원(餘怨)이 변하여 있었다.

인문학은 매개학이라고도 한다. 끝도 없이, 끝을 지우며 이동해온 인류는 매개 없이 대상에 직입하던 동물의 단계를 벗어나서 도구를 만들고 다양한 매개를 만들었다. 언어, 문화, 종교를 매개 삼아 임계와 한계와 경계를 넓혀갔으며 작은 습관이나 사물을 통하여도 그랬다. 인문학을 매개학이라고 할 때, 매개-됨을 자처한다고 이해했다. 서로 다른 언어 게임을 매개하고 과거와 미래를 매개하고 인간의 현실과 가능성을 매개하는 것처럼. 대화의 길을 트며 길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매개는 마지막을 담보할 수 없고 담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가설적이고 거점인 상태에 배치됨으로써 생기는 긴장을 동력으로 삼는다. ‘매개라는 눈으로 사건과 사물을 보면 더욱더 고정된 것은 없다. 아우렐리우스의 금언처럼 변화의 도상이다. 내적 확실성 같은 것을 주장할 수 없고, 차라리 어떤 이론이나 감정, 말을 재고의 영역, 가설/준거적인 것으로 두는 편이 사태와 거리를 좁히고 이동도 쉽게 한다.

어떤 관계에 압도되었던 순간이 있었다. 압도될수록 내적 확신에 휩싸였고 균형을 잃고 격심해졌다. 자칫하면 관계를 그르칠 것 같았다.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스스로 빠져나갈 수도 버틸 수도 없는 지점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확실한 것들을 가지고 혼잣말을 하듯 확인을 구했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에 안심했던 것 같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 호흡을 되찾았다. 전화를 끊었고, 그리고, 어쩐 일인지 마주해야 할 대상에게로 다시 나아갈 수 있었다.

스스로 나아갈 수 없을 때 한 사람을 매개 삼아 이동을 했다. 짤막한 일이지만 특별하게 기억하는 건, 통화 이후, 나도 이동을 했지만 그도 그곳에 없다는 점에서다. 각자의 몫에 대한 침범 없이, 더도 덜도 아닌 매개였던 한 존재를 통하여 어떤 암약에서 빠져나온 경험. 이후, ‘매개 됨을, 묻는다. 그리고 매개로서, 스스로의 일을 이해해 본다. 잠시의, 어떤, 무엇의, ‘매개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소득은, 앞서 말한 남아있는 원망에 그러한 자기 이해가 역-침투한 것. '매개'였다고, 투여된 에너지의 의미를 발명한 것일까, 여원(餘怨)이 옅어졌다. ‘매개아닌 고정불변한 것이 되려는 욕망도 옅어졌다.

이번 <장숙행>에서 몸이나 생활, 관계에서 막힌 것이 정신이 크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이치를 배웠다. 어렵다고 회피하거나 두려워서 막아놓은 것, 주변처리한 일들은 결코 주변적이지 않다. 정신에 작용을 한다. 그래서 막힌 것을 헤집어 뚫어냄으로써 다른 문제가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관계의 문제나 원망의 문제에 맞대들지 않더라도 공부하는 부산물로서 풀려나고 변화하는 방향도 본다. 열심히 방을 닦았는데 마음이 닦이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융통에 유심할 일이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더욱더.

배운 말이 있었고 경험의 딛고 조금 나아갔다. 자신을 매개로 이해하게 된 것. 그래서 풀려난 고착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 싶었다. ‘매개로서 자신을 이해할 때, 무엇이 또 달라질 수 있을까.




인문학적 이치의 근본은 안팎이, 서로가, 앞뒤가 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필경 둘(2)이 아니라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집중과 영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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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신 2020.09.04 13:07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스피노자의 형이상학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인간-정신의 매개성을 그 극단에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인간의 개입이 품은 가능성을 헤겔처럼 '놀랍게' 펼쳐보인 이는 없었으며, 이런 점에서 그의 철학은 종교와 철학이 일치하는 자리에 초대하는 초청장이기도 하다. 물론, 그 초청장의 발신인과 수신인은 동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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