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왕의 스승 장량 독후감 ] 연이정
살아가면서 합리나 논리로 풀리지 않는 일들 앞에 ‘꾀’를 희망하곤 한다. 선생님께서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책사 중 한명으로 장량을 소개하셨다. 주군 유방을 도와 천하를 쟁취한 그의 위대함은 무엇일까? 그에게서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의 위대함에 대하여>
장량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타고난 능력보다 그 능력을 변화시키고 완성시킨 세 번의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 창해군과의 만남- “굽은 것이 온전하다(曲則全)”
장량은 초기에는 진나라에 대한 분노로 복수심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그러나 12년간 창해군과의 만남을 통해 복수심으로 경직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절제와 유연함의 도가적 사상으로써 자신에게 부족한 인내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드시 살아남아, 명성보다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삶의 태도와 때가 아니면 물러날 줄 아는 능력을 그로부터 배우게 된 것이다.
2) 황석공과의 만남- 황석공과의 만남은 장량의 내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장량은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이라는 병서를 받아 10년간 병법을 연구하며 ‘예(禮)’를 익혔다. 점차 ‘청정하고 텅 빈 마음’과 ‘낮고도 부드러운 태도’를 근본으로 삼아, 천천히 유가적 사고를 넘어서 도가적 세계관을 체득하게 되었다. 마침내 장량의 심신은 안에서 밖까지 모두 변화하고 있었다.
3) 유방과의 만남–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의 만남
장량은 오랫동안 자신의 깨달음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았지만, 쉽게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방은 달랐다. 그는 장량의 말을 즉시 이해했고, 그의 전략을 신뢰하고 받아들였다. 장량이 오랜 시간 축적한 사유를 유방은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전략가인 장량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욕망을 읽을 줄 알았고, 야생의 직관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잘 알아보고 쓸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포용적 리더의 기질을 갖고 있는 유방과의 만남은, 마침내 한나라의 통일을 이루게 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은 [유후론]에서 장량을 단순한 책사가 아니라 자기감정을 다스리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물로 평가하며, 장량의 위대함은 자기 절제력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후론이 말하는 핵심능력은 아래와 같다.
1. 참을 줄 아는 능력 2. 때를 기다리는 능력 3. 주변상황이나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통찰력 4.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능력(삼걸 중 유일하게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점>
장량의 ‘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전략적 사고방식이다.
1) 즉각 반응하지 않는 힘: 문제 앞에서 바로 반응하지 않고 사태를 파악한 뒤에 행동
2) 우회하는 지혜: 정면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전략적 우회를 선택
3) 만남의 중요성: 준비된 사람에게 그 만남이 찾아온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
4) 자신을 지키는 선택: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물러설 줄 아는 힘
오늘날의 지도자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 장량의 이야기는 응하기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본 받아야할만한 참조점이 많아 보인다. 물론 장량의 꾀는 전쟁 속에서 이기는 꾀이니, 우리가 공부하는 인문학에서 응하기의 꾀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위급할 때 논리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활용하는 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된 우회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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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1)
<제왕의 스승 장량> 독후감
孰定而匪
1.
9월 가을 깊어 사방 들판에 서리 날리고, 九月深秋兮四野飛霜
하늘 높은 물은 말라 찬 기러기 슬피 우네. 天高水涸兮寒雁悲愴
수자리 생활 괴로움에 밤낮으로 방황하며, 最苦戌邊兮日夜傍徨
방패와 무기 잡고 해골처럼 모래언덕에 섰네. 披堅執銳兮骨立沙崗
집 떠난 지10년이라 부모와 생이별이고, 離家十年父兮母生別
아내는 어찌 견디나 독수공방 외롭겠네. 妻子何堪兮獨宿孤房
(…)
백발 부모 문에 기대 가을 물만 바라보고, 白髮倚門兮望穿秋水
어린 자식 아버지 생각에 눈물로 간장 끊네. 稚子憶念兮淚斷肝腸
2.
“밤이 되자 해하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초나라 군사들의 마음이 흔들리며 원성이 들끓었다. 그때 갑자기 주변 한나라 군영에서 쓸쓸한 가을바람을 타고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먼 곳에서 점점 가까워지면서 초나라 군사들의 귀에 들어와 박혔다.”(254)
사면이 초가四面楚歌다.
한漢나라 모사 장량은, 초패왕 항우의 군대를 와해시키는 방법으로 무력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이용했다. “초나라는 중원과 언어도 달랐고 음악의 음률도 크게 차이가 났다. 초나라 음률은 슬프고 애절해서 때로는 오열하는 듯 흐느끼는 듯 했고, 때로는 애원하는 듯 원망하는 듯 했다.”(255) 고향을 떠나 수자리하는 고달픔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적에게 뒤쫓기며,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들려온 애절한 고향의 노래는 안 그래도 떨어진 초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와해시키기에 충분했다. 노래를 들은 초나라 군대는 병사뿐 아니라 항우와 일찍이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장수들까지도 병영을 이탈했다.
장량이 ‘사람의 마음’, 곧 인간의 ‘마음의 지형’을 두루 살펴 유방을 도운 것은 이 일뿐만이 아니다. 유방은 기원전 202년 10월, 홍구를 넘어 항우를 추격하던 중 팽월과 한신에게 원군을 보내달라는 지원 요청을 한다. 하지만 팽월은 “위나라 땅을 이제 겨우 평정하여 아직 민심이 불안합니다.”(246) 등을 이유로, 그리고 한신은 ‘시간을 끌며’,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한시가 다급하고, 두 사람이 어느 편에 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방은 이 두사람에게 의심, 원망, 적개심 등의 감정을 품게 된다. 이 때 장량이 팽월의 욕망과 원한, 한신의 의구심 등을 유방에게 말하며 팽월과 장량의 마음을 달래는 방편을 써서, 그들이 유방을 도울 수 있도록 길을 낸다. 일찍이 항우와 함께 관중에 입성하고도 분봉받지 못했던 팽월의 원한을 짚고, 제나라 왕에 분봉된 한신이 ‘스스로 왕을 칭한 것이지 전하(유방)의 본심이’아니었기에 안심하지 못하는 부분을 짚은 후, “만약 모두 힘을 합쳐 항우를 격파하면 진땅 동쪽에서 바닷가에 이르는 땅은 전부 제나라 왕 한신에게 (…). 또 수양 이북에서 곡성에 이르는 땅은 모두 팽월에게 주고 그를 왕에 봉”(250)하기를 권한 것이다. 이는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할 때 없어서는 안될 전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이로써 유방은 대륙 통일의 대업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이외에도, 유방이 한중과 파촉에 분봉되어 파촉에 들어갈 때 잔도를 불태워 항우를 안심하게 한 일이나, 광무산에서 대치하며 유방의 부친 태공을 삶아 죽이려던 항우의 마음을 돌린 일 등등 또한,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하여 천 리 밖에서 승리를 취한다’던 장량의 혜안이 ‘무엇을 아는지’로부터 기인하였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3.
장량은, 소위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한’(단보선생) 사람이다. 그는 조부때부터 한韓나라의 재상을 지낸 가문에서 태어나 귀족적 소양을 갖고 있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예禮에 관한 ‘지식이 천박한 것’을 염려하여 회양 일대에 가서 예禮를 체계적으로 혹은 분명한 목적(한나라 재건)을 가지고 배웠다고 한다. 그가 예를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일까, 그를 통해 장량은 어떤 됨됨이를 키웠을까, 그 인과성을 직접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를 심도 있게 배운 후에 장량의 인간됨이나 세상을 보는 시야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후 동쪽 한반도의 은자 창해군을 만나게 되는데, 장량은 창해군에게 “복수는 조급해서는 안” 됨을,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무명으로 사는 삶도 마다하지 말(40)”아야함을 배웠다. 창해군의 말이 귀감이 되었는지 장량은 창해군 곁에서 12년을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철추형’과 함께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저격한다. 하지만 박랑사 저격은 실패로 끝난다. 잘못 저격해서 옆 수례를 쳤기 때문이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저격이 실패했기에 숨어든 하비에서 장량은 황석노인을 만나<태공병법>을 얻게 된다. 인구에 회자되기를, 장량의 성모聖謀됨은 하비에서 만난 황석노인과의 기연,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태공병법>에 통달했기에 가능한 것이라 한다. “이전에 장량은 주로 유가 경전을 공부했다. 그러나 지금 그 병서는 ‘요점과 근본을 잡아秉要執本’, ‘오직 청정하고 텅 빈 마음을 견지해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獨任清虛可以爲治’는 학설을 제기한다.(…)그의 육체는 천천히 도가 학설에 젖어들었고, 그의 두뇌 속에 자리 잡은 유가 중심의 예학체계도 점점 씻겨나가고 있었다. 장량의 심신은 안에서 밖까지 모두 변화하고 있었다.”(53) 그가 ‘예’를 배움으로 겪게 된 변화를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듯, 그가<태공병법>을 배워 겪게 된 변화 또한 그의 인간됨의 언행과 운신으로서만 그려볼 수 있다. 예컨대, ‘홍구강화’후, “큰일을 하는 사람은 작은 절차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항우를 격파하기만 하면 더 이상 담판이나 조약을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244)와 같은 말은 <태공병법>을 알기 전의 장량이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장량의 조언을 들은 유방은 ‘홍구강화’를 파약하고, 물러나는 항우의 등에 칼을 꽂았다.
배움이 그, 장량을 변화하게 한 일면一面이다.
4.
장량이 살았던 시대는 전국칠웅의 각축이 진나라에 의해 통합되고, 진시황 서거 후, 호해(혹은 조고)와 자영의 시대를 거치며 진나라의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로 전락한 시대였다. 큰 권력의 축이 저물어가니, 빈 권력의 중심으로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전국의 의협/호걸들이 봉기하였고, 대륙은 다시 한 번 하나의 중심을 만들기 위한 진통을 겪는다. 평화시가 아니라 큰 전쟁의 소용돌이 속이었던 것이다. 생사여탈의 권한이 필부에게도 제후에게도 진의 왕족에게도 온전하지 않았던 시기. 활짝 열린 기회만큼 한 번의 실수가 죽을 자리를 향한 선택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진나라에 대항한 첫번째 반란은 소작하던 농민 진평에 의한 것이었고, 다시 대륙을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한고조 유방 또한 개백정들과 어울리던 평민이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아닌 ‘살기 위한 내몰림’ 혹은 ‘의義를 향한 충절’의 행함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용돌이의 중심을 향해 내달리는 인간들 사이에서, 거침없이 자기 욕망과 당위를 내세우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편을 먹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온갖 계략과 지모智謀를 통해 살자리와 죽을 자리를 넘나들던 시대.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앎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장량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장량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앎’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에 ‘어울리는 앎’을 행사했다. 이는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밝혀 주는데, 한나라의 또 다른 모사 역이기가 주나라 왕실의 고사를 들어 유방에게 조언한 말에 대응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역이기는 유방에게 옥새를 만들어 육국에 제후왕을 분봉하여 황제가 되시라는 조언을 하고, 유방은 이를 실행하려 했다. 이에 장량은 “누가 폐하에게 이런 계책을 냈습니까? 폐하의 대사는 끝나게 됩니다.”(202)라며 젓가락을 가지고 역이기의 계책이 잘못되었음을 조목조목 밝힌다. “근래 몇 년간의 단련을 거치며 그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됐다. 즉 지금은 천하 통일이 이미 대세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다시 또 낡은 방법과 낡은 법도에 기대 육국의 후손을 제후왕으로 책봉한다면 제후왕들은 자신의 작은 소굴을 지키려고 각자의 정치를 하며 서로 공격을 일삼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는 다시 분열과 혼란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진시황이 육국을 멸망시킬 때는 진나라의 공격력이 강하기는 했지만 육국의 기반이 이미 거의 뒤흔들린 뒤였다.(…) 그는 예민하게도 유방만이 초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민심을 얻은 후 불후의 공적을 세울 수 있다고 간파했다.”(209) 다시 분열이냐 통합이냐의 길에서 장량은 시대의 흐름을 통합의 길로 읽고 이에 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역량을 다해 유방을 돕고 다시 한번 대륙에 통일된 국가를 세웠다. 물러섬 없이, 명료하게 그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앎’의 주체가 되었던 것이다.
5.
장량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분발하여 시대를 살았다. 그는 작은 절차에 구애되지 않았기에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었고, 약속 보다는 거머쥘 승리(목적)에 집중하고, 옛 문법에 치중하기 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조응했다. 더해, 혼란으로 점철된 전쟁의 시대를 종결짓는 데 일조하고 참극의 지대로 내몰리던 백성들에게 일상을 찾아주는데 기여하였음에도, 뜻을 이룬 후에는 세상에서 물러나 보신하는 삶을 살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유교, 창해군, 도가의 병서, 그리고 그의 경험 등을 통해 두루 인간사의 생리나 인간 마음의 무늬를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욕망과 욕심, 혹은 자의식에서 거리를 둘 줄 알았기에 타인의 마음의 지형을 정확히 파악하고 명료한 계책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그와 그의 행적이 인간사의 생활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를 추동시킨 의욕은 또한 무엇이었는가.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정도正道보다는 꾀를 부려야만 살 수 있었던 ‘전쟁의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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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스승 장량』 /
는길
“장량은 지모智謀가 많았지만 마음에 진실로 사사로움이 없었다.”良雖多智 而心固無私 _왕부지王夫之
‘모성(謨聖)’이라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장량을 지시하면서 동시에 꾀(謨)와 성(聖)이 나뉘지 않는 지경(不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탐구하는 꾀는 장량의 그것처럼, 어떤 성취로서의 꾀, 자기 존재를 물고 들어가는 앎으로서의 꾀가 아닐까 합니다. ‘이치에 통달한 자는 꾀에도 밝다(達於理者必明於權)’라고 했던 그 꾀(權) 말이지요.
모성(謨聖)이라 일컬어지더라도 장량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그 역시 과정적/실천적 주체입니다. 다만 그는 대륙의 역사와 실존이 맞물리며 세계 구성에 간여한 까닭에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적 지식’(Jean-François Lyotard)으로 전수됩니다. 해서 역사가 최종 인준하는 모성(謨聖)의 관점에서 그를 보면서도, 그 역시 ‘되어가는’ 주체라는 관점에 천착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그의 실존적 뒷배는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타고난 기질 등 그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인자(因者)가 있지만, 이를 강화시키거나 보우하였던 사람이나 사건을 톺아볼 수 있을까요.
저는 먼저 장량의 ‘복수심’에 주목합니다. 그는 5세대 동안 재상을 역임한 한(韓)나라 가문의 자제입니다. 한나라는 결국 진나라에 귀속되었고, 장량은 국가의 몰락을 가문의 치욕으로 겪습니다. 그는 운명인 듯 국가 혹은 아버지와 강하게 동일시하며 자신의 과업을 발견/발명합니다. 한나라의 원수와 가문의 원한을 갚겠다고 결의하였고, 이를 위하여 매우 특이한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아우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안장하지 않았고, 집안의 수많은 노예와 하인들을 해산시켰습니다. 이는 마치 한 줄기 퇴로까지 끊어 자신의 운명을 오로지 국가의 원수를 갚는데 복속시키려는 결계처럼 보입니다.
비록 그것이 복수의 에너지이고, 여성주의 관점으로는 대의와 동일시한 남성적 욕망이라 하더라도, 삶의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집념〉으로 말이지요. 집념이란, 유한성을 횡단하며 그 너머의 무한을 지향합니다. 설령 지향성이나 이상, 혹은 희망으로라도 무한과 접속하는 〈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계에 대한 기본 값이 다르게 설정된 몸이겠지요. 장량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 줄 말’ 이나 ‘나아갈 길’을 찾아내었던 것은 혹여 이런 무한(無限)에 젖줄을 대고 있던 까닭이 아닐런지요. ‘무한히’ 길을 모색하는 중에 (최선이 아닌) 최고의 지략이 생성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 도가적 양생법으로 몸을 지고(至高)의 경지로 끌어 올리려 했던 것도, ‘무한과 접속하려는 몸’으로 이해해 봅니다. 제 주장은, 비록 ‘복수심’이더라도 각인된 어떤 ‘깊이’는 태도이자 형식으로 변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황석공이 전해준 「태공병법」이라는 텍스트를 깊이 만납니다. 긴 시간 의미를 궁구하며 길속글속을 배회하였습니다. 언어를 만나고 상징화의 지로(指路)를 걸으며, 상대적으로 가열된 복수심이 식어 갔으리라 추정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황석공보다도) 창해군과의 만남을 흥미롭게 봅니다. 교재는 장량이 순조롭게 제왕의 스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기실 창해군이 있었고, 훗날 황석공을 만나고 태공병법을 얻은 일, 상산사호를 초빙한 일, 적송자와의 교유 등이 창해군과의 만남에서 시작(34쪽)되었다고 기술합니다. 장량은 창해군의 지척에서 진시황 암살을 모의하였고, 실행력을 얻었습니다. 황제를 상대할 담력이 생성된 것인데, 이에 창해군의 역할이 있었다고 봅니다. 창해군은 장량에게 어떤 도움이었던 걸까요.
교재에 따르면 창해군은 ‘호쾌’하고도 ‘치밀’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호쾌’와 ‘치밀’은 양 극단의 성질과 같아서 이를 적실히 부리는 ‘통합된 존재’가 장량의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는 ‘치밀’하게, 장량이 “수척한 체형임에도 뼈 속에 소박하면서도 굳건한 의지가 깃들어 있음”(37쪽)을 간파하였고, ‘호쾌’하게 “마음 깊이 장량을 좋아”(37쪽)했습니다.
교재는 장량이 만리 길을 멀다 않고 창해군을 찾았던 것을 설명하며, “적절한 자객을 찾아 복수하려는 의도”(37쪽)였다고 기술합니다. 저는 그런 표면적 의도에 더하여 뱃속 논리를 생각해 봅니다. 혹시 장량이 창해군을 찾았던 것은 자신을 마음 깊이 좋아해 주는 ‘환대’ 때문이 아닐까요. 장량도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고 그 역시 결핍의 주체라면, 의식 아래의 뱃속에서 추동되는 것은 무엇이었겠는가, 왜 창해군을 ‘계속’ 만났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존재의 이면을 알아봐 주는 시선은 어떤 경직을 녹여냅니다. 그것은 복수의 열망으로 성마른 장량에게 반드시 필요한 양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장량은 『태공병법』의 요점이자 근본을 ‘청정하고 텅 빈 마음’과 ‘낮고도 부드러운 태도’로 정리하였는데, 바로 이 ‘부드러움’이 그 자신에게서 시작되고 경험된 것은 창해군과의 관계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창해군은 하루빨리 복수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장량의 조급함을 저지하였고, 일이 없을 때는 장량을 데리고 바닷가로 가서 바람을 쐬며 술을 마셨습니다(38쪽). 같이 놀았습니다 !
장량은 그런 시간(성)을 통과하며 복수심으로 경직된 몸을 유연하게 하고, 여유 공간에서야 가능한 ‘너른 시야’를 얻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창해군이 있는 곳에서 장량은 “느긋하게 12년”(28쪽)을 보냅니다. 거사(巨事)를 앞둔 장량에게 일러준 창해군의 당부도 깊이 새겨볼 만합니다. 그는 장량의 의기를 북돋으며 죽음도 불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고, 이를 위하여 무명(無名)으로 사는 삶도 마다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저는 거기에 창해군이 깨친 인생관이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력 아니면 명성에 현혹되는 세속에서, 인간이 진정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한 의견처럼 말이지요. 그것은 바로 ‘나 자신’. 자신(自信)을 지킴(持)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깨침이 아닐까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아닌 것들로부터 물러나거나 포기할 수 있는 마음자리가 전수된 것인지, 장량은 끝내 자신을 지켰습니다.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인간의 꾀(謨)가 응하기의 곡절을 거치며, 삶의 형식을 변형시키고 마침내 성(聖)과 연합하게 하는 매개항으로서 ‘깊은 실존적 염원’, 그리고 ‘알아봐 주는 시선’과 더불어 ‘시간(성)’을 생각해 봅니다. 또 창해군의 당부를 통해서 자신을 지킨다(持)는 것이 무엇인지도 의제로 삼고자 합니다. 제 소견으로, 인간은 자신에 관하여 가장 집요할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킴에 무능한 채로 남을 도울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신을 지킴(持)에 정(精)과 성(誠)을 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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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제왕의 스승 장량 감상문]
이 책은 역대 모사의 모범으로 인정받는 장량이 ‘제왕의 스승’ 칭호에 걸맞은 인품을 갖게 되기까지 그 배경을 설명하고 유방이 천하를 얻게 되는 과정을 통해 비상한 책략을 제공하는 장량의 면모를 보여주며 유방이 천하를 얻게 된 이후 장량은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역사서를 읽고 배울 수 있었던 삶에 대한 큰 태도 두 가지를 통해 책을 읽고 생각한 바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하나. 장량은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태도가 있었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韓) 나라가 멸망함에 따라 가문이 박살나고 동생마저 진나라 군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었던 장량이 그 복수를 위한 계획으로 가장 먼저 주나라 예법 및 그와 관련된 예의범절 공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35쪽) 그는 복수심의 불길을 적을 향해 쏟아내기 전에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심난한 상황에서도 공부에 의미를 둘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5세대 동안 한나라 재상을 역임할 정도로 바탕이 중후한 가문에서 태어난 장량은 자신의 아들이 조부와 부친의 가업을 계승하길 바라는 모친의 희망에 부응하며 어릴 적부터 적지 않은 훈장들 밑에서 공부해왔다. (31쪽) 이러한 성장 배경에서 공부하는 태도와 선비의 자질이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졌으리라 생각된다.
예(禮)를 익힌 것은 이후 장량 인생사에 중대한 인물 중 하나인 황석노인과의 만남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신발을 일부러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곤 무례하게 구는 노인에게 다만 그가 연세가 높다는 이유로 신발을 주워다 무릎 꿇어 신겨드리고 그 결과 태공병법을 건네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禮)를 통해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을 높이는 태도를 배운 바탕이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
둘. 장량은 조언을 귀담아듣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인정할 줄 알았다.
창해군을 통해 마음이 맞는 자객(철추 형)을 찾게 된 장량은 이후 진시황이 세 번째 순행에 나선다는 소문을 듣고 본격적으로 암살 계획에 몰두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창해군이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조언을 건넨다. “첫째, 절대로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둘째, 무명으로 사는 삶도 마다하지 마시오.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하오.” (40쪽)
창해군을 만난 뒤로도 12년을 넘게 기다렸던 복수의 날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흥분이 되고 다급해질 법도 하다. 그런 장량에게 창해군은 곡즉전(曲則全)의 자세로 퇴로를 마련하도록 조언했고 이를 귀담아들은 장량은 이후 큰 위기를 모면한다. (41쪽) 박랑사 저격사건에 결국 실패하였으나 잘 도망쳐 진시황이 내린 10일간의 대수색령을 피하고 하비에 숨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장량은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의 씨앗이 이후 태공병법을 만나 “오직 청정하고 텅 빈 마음을 견지해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학설을 공부하게 되면서 발아했을지도 모르겠다. (53쪽)
책에는 창해군의 조언과 연관해서 위 내용만 소개되었다. 그런데 유방이 천하를 얻게 된 이후 죽임을 당하거나 의심을 받았던 한신, 소하와 달리 장량은 비교적 조용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던 데에도 창해군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유방에게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서둘러 용퇴하여 유현에 머물며 은거와 운유(雲遊)의 길에 들 수 있었던 데에는 창해군의 두 번째 조언이 장량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장량이 어떻게 ‘제왕의 스승’이 되었을지 생각해 보면 ‘공부’와 ‘사람’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공부하는 태도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아가는 것 말이다.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말에 대해서는 훌륭한 은사인 창해군과 태공병법을 준 황석노인 같은 ‘사람’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만 하비에서 장장 10년간 태공병법을 연구하던 장량이 의식적으로 방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