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청이음에서는 봄꽃을 보며 걸어볼 요량으로 영도의 안내를 받아 부암동 백사실 계곡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봄비 내린 숲에는 산벚꽃이 아직 남아 우리의 산책길을 화사하게 비춰주고, 때이른 복숭아꽃이 벚꽃보다 더 짙은 분홍빛으로 계곡 안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리고 산개나리 꽃이라니요! 아파트 담장에서 주로 보았던 개나리는 초록 잎이 올라오기도 전에 노란색 꽃들이 너무 조밀하게 피어 숨쉴 틈이 없을 듯 답답해 보였었는데, 산개나리꽃이 연두빛의 새잎들과 함께 군데군데 여유있게 피어 바라보는 사람의 눈매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진달래며 조팝나무꽃, 아, 봄산은 어찌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요! 방금 비 그친 후 어스름 짙어 오는 백사실 계곡에는 물안개마저 서려 어떤 고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환상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그 계곡 한 켠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소유한 적이 있다고 하는 (집은 허물어졌지만) 집터가 있어, 집터 앞 돌계단에 앉아 기다리노라면 추사 선생이 마중을 나와 인사를 건넬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잠시 거하다 떠나지만, 자연은 그대로 남아 300년 전에 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 풍경을 오늘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찡-하는 울림이 있었는데, 그 울림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는 두고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새순으로, 여리디여린 꽃으로 막, 막, 부풀어 오르는 백사실 계곡에서 동학들과 더불어 걸으며 한 풍경 속에 있었던 2023년 4월의 어느 봄날을, 지극한 쾌락의 순간을, 언젠가 다시 소환하더라도 온전한 기쁨으로 기억하고자 합니다.
(백사실 계곡에 봄꽃들이 활짝 피어 화사하였는데, 정작 그 사진들이 남아 있지 않아 분위기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