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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에 들어서다 -낭독하는 삶



曉愼(효신) 



저는 속속의 공부를 시작한 이후, 공부를 하기 이전의 삶과 공부를 하고 난 이후의 삶으로 제 자신을 거울에 비추듯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비추이는 것은 가난한 에고이지만, 거울 너머의 변화되고 있는 저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에고가 보입니다. 나에게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자리는 저에게 집중을 요구하며, 이것은 나를 넘어서는 공부의 가능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그래서 집중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자칫 저의 전부였던 에고마저 빼앗기게 될까 불안한, 평범한 일상의 변주(變奏)에도 정면대결하지 못한 타협의 에고로 물들었던, 가난한 자의식을 움켜 쥔 자의 반성이며 성찰의 시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집중의 방식을 통하여, 언어를 매개로, 낭독을 매개로, 진정코 차분한 인간이고자! 허실생백(虛室生白)의 그 아득한 지경을 향하여 제 몸에 공부가 얹혀지기를 우연적 타자일지라도 화해가 아닌 이해로써 더불어 밝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속속의 낭시경에서 낭영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요즈음, 에고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낭독의 본령을 말씀하신 k선생님의 글을 읽고 낭독의 형식에 더욱 궁금증을 갖게 되었던 바, 세속의 어긋남에 지친 인간으로서 낭독의 비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빈자리에 비쳐드는 무심의 경지라면, 저는 외롭고도 어리석었던 에고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라도 끝끝내 집중의 힘으로 에고의 거울을 깨고 나아가려 합니다. 억압과 상처받은 인간의 에고는 이미 죽어버린 신(神)에게는 구원 받을 수 없기에 타자에게 품었던 어리석은 고백들만이 뒹구는 낙엽처럼 거리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찌하여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고백하였던 것일까요. 그리하여 건강하지 못한 에고가 향한 곳은, 상처를 감추어 뒤엉키어 곪아버린 지극히 인간적이고 일상적이었던 자리일 수 밖에 없었겠지요. 차라리 단단한 에고의 문을 고요히 열어 두었더라면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었을지언정, 구름처럼 가벼이 품에 안을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이 또한 변명의 에고임을 비켜갈 수 없겠지만 에고를 벗어난 나를 지혜롭게 들여다보는 앎은 이미 에고에 갇혀 있었으므로 참으로 요원(遙遠)할 뿐이었습니다. 에고의 자기보수적(自己保守的) 응체(凝滯)와 고집『집중과 영혼 695쪽』을 비워내지 못한 대가(代價)였을까요. 공부하기 이전의 삶은 그토록 메말라 부끄러움조차 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생각이 타자에게 닿지 못했던 이유를, 혹은 타자에게 닿아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그 무엇에도 닿지 못하여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고야 마는, 그래서 영영 더 나은 삶은 기약 없어지고 절망만이 남아 어긋남의 세속에 진정 나를 개입시키지도 못한 채 공부의 바깥을 맴돌다 사라질 뻔 하였습니다. 그렇다해도 알 수 없는 채로 삶은 아름다웠노라고 마지막 숨과 화해할 수 있었을지, 저는 아직 살아있기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습니다. 

타자와 관계 맺는 삶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원망과 고통이 켜켜이 빚어낸 무거운 시간이며 다시 돌아보아야 하는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빛으로 향하고자 할 때에 무수한 매개들의 아우성이 들립니다. 그것의 실체가 어떠하든, 그것은 나의 생활에 대한 타자의 개입이고 나 자신의 개입일 것입니다. 공부 이전의 삶에서 타자의 개입은 간섭이고 자신의 개입은 소득 없는 고집일 뿐이었다면, 공부 이후의 삶에서 타자의 개입은 나의 공부를 밝히는 장소가 되고 자신의 개입은 몰입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에고를 벗어난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집중의 한 형식으로써 낭독을 매개하여 낭독하는 삶의 형식으로 좁은 길에 들어서보고자 합니다. 글자 하나, 혹은 한 구절의 어긋남을 넘어 내가 나에게 되먹임 되지 않고 나의 개입마저 사라져버린 그 흰 빛의 자리를 깨닫게 되기까지 점점이 계속되는 숙명『집중과 영혼 575쪽』인 낭독으로 저의 부족했던 삶을 이어가겠습니다. 비록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부조리의 향연이 난무한 세상에서 저에게는 여전히 찰나(刹那)이며 우연이며 거짓인 꿈으로 다만, 떠돌지 않고 응시하며 소리내어 말하되 고독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