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상반기 신입숙인 모집을 앞두고 있습니다.
12월 4째 주에 공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 아무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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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대구〈가이소〉에서 공부하시다가 서촌 강연에 참석한 후, 곧 바로 〈길속글속〉청강을 신청하셨지요. 어떻게 청강을 신청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무: 처음 청강 온 날 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서촌 강연에 오신 숙인들이 여럿 있었는데, 숙인들의 ‘자기소개’가 남달랐다는 거죠. ‘깊이’라고 표현해도 될는지. 선생님을 만났을 때처럼, 삶에서, 직접 실천하는데서 얻어지는 생각이나 말들에 감명을 받았어요. 실천에서 오는 진솔함이 느껴졌어요. 청량감이랄까, 신선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래서 가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답니다.
〈장숙〉공부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삶의 지향 속에 살아오셨나요?
아무: 젊은 날 20대 중후반부터 50대까지 2~30년을 교육운동과 사회변혁운동에 매달렸어요.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대안을 만들어 애를 썼습니다. 시스템을 고치면 사회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면서 골몰했고 평생 매달린 일이에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하나도 변한 게 없는 현실을 보게 됐어요. 한 예로, 교직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사교육이나 문제지풀이에 매달리는 상황을 개선하고 싶었지만,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허탈하고 무력감에 모든 것을 놓아야하는 시간이 오고, 결국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다른 문을 열어야 되는 시점에 선생님을 만난 거예요. 결국 모든 게 ‘사람’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삶의 자세, 태도 같은 것이요. 소학의 가르침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요.
〈장숙〉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먼저 아내와 대화를 나누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아내 분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셨는지요.
아무: 가족이나 식구로부터 지지받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 같아요. 부부간 의견갈등도 많았고 자녀 양육 문제에서도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부부가 깊은 내면의 이야기나 생각이나 사상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해시키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인사동 〈장숙강〉에 아내와 함께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뒤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았고, 조금 더 지지를 많이 해주고 있어요.
물론, 아내가 우려하는 바가 있어요. 우리는 성당에서 결혼을 했고 ‘신앙’이라는 같은 뿌리가 있다고 여겼는데, 남편이 영 다른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 들었나 봐요. 나중에 들어보니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더라고요. 변명을 할 생각은 없었고, 선생님께서 종교를 ‘정신의 외주화’라고 표현하신 부분을 깊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아내와 신앙에 대해 같이 얘기해 보기도 하고요. 그런 저의 태도로 인해 아내는 오히려 성경 공부나 신앙 활동을 열심히 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아무튼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면서 전과 다르게 서로의 내면의 생각을 주고받게 되었고요. 선생님께 배운 〈연극적 실천〉이라는 행위가, 부부간의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전과 같으면 “각자 알아서 하자”, “고마 됐다”, 하면서 소통의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소통이 늘어났고 제 나름대로는 발전이 있어요. 아내는 아내대로 열심히 하는 생활이 생기니 서로에게 상생적인 면이 생겼다고 생각됩니다.

6개월 동안 장숙 공부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아무: 매 속속 마다 진행되는 〈영원한 자기소개〉에 영원히(?) 당황해요. 그래도 분명한 건, 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내면에서 채워지는 충실감이 있어요. 직입하여 자신을 알 수 없고 우회적인 앎의 길이니까, 너무나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또 하나, 선생님의 글은 신중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만, 〈장숙〉의 분위기는 곧잘 웃고 선생님께서도 유머나 해학적 표현도 마다않으시고, 숙인들은 늘 웃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즐거워하는 장면이 특이나 인상적이었어요.
아무에게 〈자기구제〉란 무엇인가요?
아무: 누군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말년에 아주 적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자기구제’란 말을 알게 되었고, 〈영원한 자기소개〉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합니다. 매일매일 매순간, 질문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 같아요.
선생님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질문은, 끊임없이 ‘되어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해요. 계속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이 자기 구제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자기구제란,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내가 되어가는 그런 길에 서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어요. 어디서 멈추게 될지 몰라도 ‘되어가는’ 길에 서있다면, 스스로를 구제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입학을 신청하실 때, 전 재산을 팔아 보물이 묻혀 있는 땅을 사는 심정이라고 하셨지요. 공부를 하며 생겨난 희망 그리고 절망이 있는지요.
아무: 선생님의 책을 보면 엄청난 인용문이 나오는데요. 방대한 인용문에 깊이 매료되었지만, 막상 공부를 하니까 갑자기 두려운 감이 생기는 거예요. 이 많은 사상가나 많은 책들을 다 읽고 알아야 된다는 두려움과 절망 같은 것이 다가와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깊은 회의가 한순간 몰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아도 해결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앎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책에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 나오는데, 선생님의 어깨를 빌려서 보자, 세상도 나의 미래도.
마지막으로 〈장숙〉 공부에 관심이 있으나 망설이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아무: 저는〈장숙〉의 숙인이 된 후로 건강이 더 좋아졌습니다. 아마도 선생님과 함께 ‘몸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버릇을 한 가지씩 바꾸면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동무란 몸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입니다. 함께라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