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ㅇ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간 민ㅇ씨는 독감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저는 이사 일로 몇 차례 약속을 미루다가 드디어 통화를 하게 되었어요.
오전 9시. 민ㅇ씨의 목소리가 많이 잠겨있어 물었더니, 아직도 목소리가 회복이 안되었다고요. 잠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인터뷰에 응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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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ㅇ씨는 어떻게 선생님을 알게 되고, 서촌 강연에 오게 되었지요?
대학원 동기의 소개로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동기의 문체가 독특하고 글을 너무 잘 써서 계속 읽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동기가 자기 글은 모두 선생님을 닮기 위한 노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누구이신지 검색을 해보았고 궁금함이 생겨서 서촌 강연에 직접 가보게 됐어요.
그곳에서 숙인들의 자기소개를 듣는데, 저마다 자신의 공부에 애정을 갖고 있는 거예요. 사회에서 인정하는 걸 이루거나 성취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데, 자신의 공부를 아끼고 이것이 나의 공부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대학원 공부를 할 때는 그 초점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남들이 알아주는 연구의 성과나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비교하는 시선이 생겨서요.)
이후 <장숙> 홈피에 올라온 글들을 다 찾아봤어요.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요. 자신을 위하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장숙>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 통화한 날, 민ㅇ씨는 스스로에게 ‘공부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었어요. 얻게 된 답이나 앎이 있나요?
답을 얻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묻고 있던 공부의 자격과 지금 제가 묻는 공부의 자격이 다르다고는 말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남이 알아주는 성취를 내는 게 공부의 자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구의 성과가 있는지, 글을 잘 쓰는지, 주제에 참신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등이요.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내 삶을 떳떳하게 살고 있는가. 이것이 공부의 자격 같아요. 공부한 대로 살고 있는가? 살고자 하는 대로 공부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이 변했어요. 적어도 지금은 타인의 시선이나 연구 성과물을 공부의 자격으로 보지는 않아요.
얼마 전 (영원한) 자기소개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과 '꾀'의 문제를 정리해서 말한 적이 있지요. 인상 깊었답니다. 어떻게 <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전적으로 선생님 때문에 꾀를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꾀가 뭐지? 주어진 주제니까 공부해야지.’ 정도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늘 고민하던 문제였어요. ‘꾀’라는 단어와 개념은 몰랐지만 그 주위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찾고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꾀’를 적용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공부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이기적이라는 판단이나 투사도 생기고요.
그럼에도 지금 저에게 ‘꾀’란, 공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고, 공부를 지속할 환경을 만드는 장치예요. 관계나 공부가 어려워질 때, 길을 내주는 개념이 됐어요.

<장숙>의 최연소 학인인데요, 여러 연령대의 학인들과 어울리며 얻게 되는 소득 혹은 어려움이 있나요?
이 질문을 받고서, <장숙>에 다양한 연령대가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나이’가 눈에 띄었던 적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나이’를 많이 생각했어요.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낸 성과나 더 나이 들기 전에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면서요.
장숙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속도로써 삶에 임해요. '나이'보다는 선생님께 배운다,라는 학인들의 분위기가 있어요. 나이의 격차가 큰데도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질문이 계기가 되어서 돌아보니, 제가 연령이 높으신 분들에게 많이 배운 것 같더라고요. 연세가 높으셔서 배웠기 보다는,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 특히 하루하루의 순간을 소중하고 솔직하게 살아내시는 태도를 배웠어요.
장숙에서의 6개월, 민ㅇ씨에게 어떤 곳이었나요?
아직 잘 모르겠기는 해요. 남들에게 소개할 때도 충분히 얘기를 못해요. 사람에 따라, 천안까지 가서 공부한다는 말을 못 하고 토요일에 공부 모임이 있다는 정도로 절충해서 설명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 자신에게 분명한 건, 개인적으로 6개월 동안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나 압박이 많았거든요. 전과 같으면 제가 하고 싶은 공부나 저를 포기하고, 주어진 책임이나 주변인들이 기대하는 일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장숙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래서 <장숙>이 나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지켜준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놀랐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재미있었던 순간은요?
연이정의 자기소개와 질문,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처음에는 연이정이 하루하루를 소중히 대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기소개를 들으니 ‘하루’도 아니고 ‘순간순간’이더라고요. 이게 되게 놀라웠어요. 학인들의 모습이 다 인상 깊지만 특히 연이정의 ‘순간순간’이라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어요.
놀랐던 때도 있어요. 심포지엄을 준비하며 한주에 한번 미ㅇ씨 조에서 온라인 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다 같이 페미니즘 책을 한 권 읽었거든요. 그런데 아무가 자신은 처음으로 이런 책을 읽어 본다고 하면서, 그런 책을 접하게 된 걸 되게 고마워하는 거예요. 어떻게 겸손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하면서 놀랐어요.
힘들었던 순간도 있어요. 식사 조에 처음 참가하며 야채를 썰었는데, 당근, 호박, 양파... 1년 치를 다 썬 것 같아요. 이후에 채칼을 샀어요.
재미있었던 순간은, 여름 장숙행에 갔을 때랍니다. 유재와 먼저 도착해서 김밥을 사 먹고 공원을 돌며 놀았거든요. 되게 짧은 시간이었는데, 저에게는 깊은 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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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2025년 6월에 입학해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신입 숙인 세 명의 인터뷰를 마칩니다. 인터뷰에 응하여 준, ㅅ진씨, 아무, 민ㅇ씨 고맙습니다.
숙인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