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는 흔히 '영원한 자기소개'라고도 일컫는데, <장숙> 혹은 내가 주관해온 여러 공부모임에서 긴 세월 유지해온 독특한 공부의 형식입니다. 그간 신입숙인들이 늘어나는 등, 여러 사정으로 이 고유한 공부의 형식이 지닌 취지가 망실되는 듯해서 다시 그 뜻을 되새기니, 적절히 참고해서 서로에게 유익한 기회가 되도록 애쓰기 바랍니다.
1. 숙인들이 스무 명을 훌쩍 넘기고 있으니 우선 시간량이 부족한 편입니다. 각자 3분 정도를 가늠해서 말하고, 5분을 넘기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자기소개의 시간은 여러모로 매우 가치있는 기회이므로 가급적 선용하되, 준비된 말이 없이 언거번거하지 않도록, 스스로 學人의 화법을 키워가기 바랍니다.
2. 우선, 당연하지만, '인사'입니다. 사람은 인사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특히 이 절차만 제대로 양식화하면 웬만한 '보상의 위기'도 넘길 수 있습니다. 불교용어인 회석(会釈, えしゃく)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대개 회석의 뜻은 셋인데, 그 첫째가 인사, 둘째가 상냥함(cordiality), 그리고 마지막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제 나름대로 해석함'이랍니다.
3. <장숙>의 공부는 (헤겔철학의 취지처럼) '알아가는 그 과정 중에 변해있는' 모습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의 중심이 되는 취지는, 만나지 못한 사이에 알아가고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선비는 사흘을 헤어져서 다시 만나면 눈을 비비고 상대한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는 옛 글을 상고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다들 입을 모으지만, 공부는 변하기 위한 애씀이니 다른 도리가 없지요.
4. '생활나눔'도 좋습니다. 그러나 공부의 빈 자리를 채우는 부어(浮語)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과연 생활이 공부의 허리이고 뱃심이지요. 그래서 더욱 생활이 공부에서 소외되는 지점을 줄여야 하겠습니다. '평상심이 도(道)'라거나 '어디가든 공부가 아닌 게 없다(無往而非工夫)'고 할 때의 취지가 그런 것입니다.
5. 자기소개는 재서술(redescription), 자신에 대한 자신의 재서술입니다. '어휘가 자아를 창안'(R. 로티)하고 다르게 말하기가 자유의 흐름을 이루고, 또 말이 길을 만들어간다고도 했지요.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토대나 이데올로기에 묶어놓지 말고, 긴 변화와 생성의 흐름 속에 놓아둔 채로 그 흐름의 하루하루를 다르게 서술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인문학 공부의 알짬입니다. 인간은 정신이고, 그 정신이 언어에 맺혀 있을 때에, 다르게 말하는 것은 곧 다른 세계를 열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6.자기소개도 '雜多'하기 보다는 제 나름의 서사적 줄기와 그 역사를 얻어가도록 배려하는 게 좋습니다. 그 소재야 잡다하더라도 그 취지(趣旨)는 자신의 공부길과 관련해서 일관성을 갖도록 애써 보는 것입니다. 긴 생각의 흐름 속에서 사상이 나오고, 원대한 꿈이 집요해지면서 새로운 정신의 길이 현실화하는 것처럼, 글이나 말도 하루살이의 것이 아니라 십년, 혹은 백년의 조감(鳥瞰) 속에서 구성될 때에 자신의 삶과 습합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