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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08:22

<주은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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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 평전>/ 권대환



저우언라이를 설명할 때 자주 따라붙는 말은 탁월한 조정자라는 평가다. 혁명 시기에 공산당 조직 운영과 군사·외교 부문의 실무를 조율했고, 문화대혁명이라는 대혼란 시기에서도 행정 체계를 유지하는 데 주춧돌의 역할을 했던 이력을 봐도 그렇다. 이 외에도 그의 삶의 행적에는,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여러 혼란의 상황을 끝내 파멸로 치닫지 않도록 중재하고 다시금 질서를 되찾게 만드는 데에 뛰어났던 모습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런데 저우를 뛰어난 조정자라고만 표현하는 것은 저우가 가진 다른 장점들과 그의 눈에 띄는 행보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는 항일 전쟁 시기에 공산당 세력을 확대하고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을 상대로 승리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정도로 정치적·조직적 전투력 또한 상당했다. 또한 국가 체제의 기초 설계를 구축할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세부 사항을 꼼꼼히 검토하고 실무까지 직접 챙기기까지 했다. 그는 단지 훌륭한 조정자를 넘어, 넓은 시야를 갖고 근본부터 사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현장에서의 실용성을 놓치지 않는 인물이기까지 했다. 어떻게 그는 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가 실패한 것은 없던 것일까?

  

 저우를 나타낼 때, 그를 조정자라거나 실용주의자라거나 꾀가 밝은 사람과 같은 표현은 그의 한 단면을 나타낼 순 있겠지만 저우의 인생을 관통하는 표현이라기엔 무엇인가 모자라 보인다. 그는 아무래도 주어진 상황이나 틀을 문제시하는 것보다 어찌 되었든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저우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자꾸만 지금 이 순간의 최선은?’이란 문장이 떠올랐는데, 그는 마치 자신이 원래 어디에 있어야 했다라거나, ‘지금 다른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거나, ‘내 본래 모습은 이것이 아니라는 따위의 고민 없이 당면한 과제의 최선만을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눈앞의 환경을 문제시하지 않고 오직 매 순간 자신이 처한 여건에서의 최선을 고민하는 이가 가지는 힘은, (저우가 보여주었듯이) 온갖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저우에 대한 따가운 평가로, 마오 체제의 피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했으나 동시에 그 폭압적 독재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 데 일조한 관리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뛰어난 지혜와 재능을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한 처세에만 발휘하고, 마오의 폭압적 정치에 맞서는 데 용기를 내지 않은 비겁한 인물이라는 말도 더러 있다. 이러한 시선이 가지는 문제의식이 일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내겐 조금 가혹한 해석처럼 보인다. 먼저 유방과 장량의 경우를 살펴보면 저우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방과 장량의 경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였으나 (다행히도)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둘의 관계는 함께 추구하는 목적지는 같았으면서도 각자 주어진 역할은 명확히 달랐다. 그렇기에 그 둘은 건강한 긴장 관계만으로 충분히 신뢰 관계를 쌓을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는 참모가 아닌 총리였고, 전략가일 뿐 아니라 외교와 행정에 있어 실무자이기도 했다. 또 장량과 유방의 경우와 달리, 저우와 마오는 끝까지 권력의 추를 놓지 않고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는 긴장 관계에 놓여있었다. 게다가 장량은 통일 이후 정치에서 한 걸음 물러서 도가적 은둔자처럼 지냈지만, 저우는 공화국 수립 이후 되레 위험에 한 발 더 가까이 자리해야만 했다. 즉 장량이 유방과의 관계에서 했던 일의 범위나 둘 사이에서의 거리감과 달리, 저우는 마오 곁에서 더 많은 일에 개입해야 했으며 또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설혹 저우의 행보가 탐탁지 않더라도 그의 시중(時中)은 시중(市中)에서 빛”(단보선생)을 발하는 최선이었던 것은 아닐까? 혁명에 성공한 이가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에 저 홀로 물러나지 않고 혁명 이후의 비용까지 감당하며 시중(市中)에 남아 있을 때, 그 빛의 밝기에는 불순한 어둠이 조금 깃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 정도의 광도가 사실 시중(市中)의 가장 탁한 자리인 정치에서의 최대 밝기는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우를 바라보려고 부러 시도하여, ‘주어진 운명에 의문을 던지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고 성실히 임했던 것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강력한 원동력이었겠지만, 스스로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 확신한 근거는 어디로부터 비롯됐는가하는 물음을 가져본다. 탁월한 재능이 안타까운 방향으로 발휘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또한 주어진 운명을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타자를 향해 한 걸음 바깥으로 나갈 자그마한 문틈을 열어두기 위해서는 어떤 윤리적 태도가 요구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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