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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4일 속속(50)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물화: 인정이론적 탐구>, 남은 부분을 다룹니다.

순서대로 발제하고, 강의, 토론, 조별토의 등으로 진행합니다.

여분의 시간이 있으면, 그간 공부한 <모방, 인정, 물화>를 대략적으로 정리, 복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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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신 2019.04.23 13:03
    *이번 50회부터는 오후 1시~2시 사이에 한문소설(<錦溪筆談>) 강독이 시작되고, 속속은 전처럼 2시부터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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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遲麟 2019.04.23 20:24

    박ㅇㅅ 하람 김ㅂㄹ 토우젠 영도 지린 허ㄱ 연니자 형선 현소자 박oo 진진 시란 해완  우ㄱㅇ , 孰人 15명이 참석합니다.  

    청강1인 (ㅎㅇ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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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遲麟 2019.05.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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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祝辭/ 어떤 공부길, <藏孰>


    1. <속속>에 어느새 힘[德]이 붙어 <장숙>을 이루었습니다. 藏孰은 알다시피 '누구를 숨겼나?'라는 뜻으로, 어떤 사람들의 장소를 말합니다. 그 학인들을 '누구?' 즉 孰人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러므로 <장숙>과 숙인은 의문형의 志向 속에서 늘/이미 생성 중인 존재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누구인지, 어디인지를 물을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지요. 藏孰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장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묻는 의문형의 길입니다. <속속>의 공부가 늘 시(詩)를 놓지 않는 이유도 이 길 속에 있습니다.


    2. 학인이 內外融通해서 생활에 힘과 지혜를 얻는 길은 여럿이지만, <속속> 공부에는 이를 장소와 사람의 일치로 상상하고 또 구체화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차(茶) 한 잔과 글 한 편을 대하는 게 같고, 방을 닦는 일과 말로 응대하는 게 다르지 않고, 혹은 약속과 낭송이 상생의 관계를 얻지요. 우리들이 사는 곳을 공부처럼 만들고, 공부를 삶의 자리에 내려앉히는 일이 <속속>의 공부가 늘/이미 행하고 있는 실험이자 연극입니다.


    3. <속속>의 공부에서는 늘 인끔과 이론을 함께 얘기해왔습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만사가 헛되기 때문입니다. 이론이 사람을 키우고, 사람이 그 이론을 증명할 수 있도록 애써왔습니다. 언제나 이론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자기 자신의 깜냥은 더러 절망스럽게 천박하지요. 그러나 피갈회옥(被褐懷玉, 襤褸は着てても心は錦)의 꿈을 더불어 꾸면서 '반 걸음, 반 걸음으로 천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不積跬步無以至千里).'


    4. 장소와 사람의 융통, 이론과 인끔의 일치, 말과 생활의 일치 등과 같이 <속속>의 공부에는 늘 불이(不二)의 지향에 힘을 써왔습니다. 그 공부의 내용을 특히 사상사와 지역학으로 대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사상사와 동아시아 지역학을 더불어 배우고, 그 접점 속에서 등고박람(登高博覽)의 새로운 공부길을 염탐하고 있습니다.


    5. 孰人은 四隣의 동무되기를 실천하는 주체입니다. 더불어 성숙하고 상생하면서 필경 자신의 삶을 그 실천 속에서 보살피고, 위안하고, 또 구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藏孰>과 <속속>은 그러한 공부의 장소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시작되었고, 또 그런 취지를 향해 나날이 재구성되고 있는 모임이지요. 그간 여러 가없는 노동과 이바지로 이 장소를 일구어온 이들은 오직 공부의 보답과 그 열매로 적으나마 보람을 얻을 수 있기를 빕니다.

    *
    이상, 선생님의 50회 속속 축사 전문을 옮겨 적는 것으로 후기쓰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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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선 2019.05.07 20:26

    1. 기념 순서로 그간 [선생님께 배운 것과 숙인에게 배운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 장소라야 가능했던 배움사귐이 낭송되었습니다. 孰人의 글과 시란의 축시, 선생님의 축사, 영옥 님의 축가는 반걸음 미래의 것이었습니다. 그날 그 시간의 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선생님께서 담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뵌 미옥 님은 담론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논리를 세공하지 못하고 뭉뚱그려 퉁 치는 사고의 버릇도 일종의 나태함이었습니다. 사적 경험을 공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학인의 책임을 가져오게 되었고, 차츰 내 세계를 건축하고 내가 살 집도 짓고 싶었습니다

    3. 50회 동안 藏孰에는 더불어 되어가고자애쓴 어떤 존재가 계셨고 그분이 계셨기에 제 꼴에 정직하게 절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지도(map)를 따라, 인류의 현/성인들이 쟁취한 베이스캠프로, [신뢰], 아득한 곳으로, 이동해갑니다.

    4. 먼 곳에서, 50회 속속을 찾아주신 청강자 한 분 손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숙인과 함께 숙인처럼 계셔주셨던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5. 인간의 실존은 조건적 실존이기 때문에 사물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사물이 인간 실존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면 한낱 아무 상관없는 품목 덩어리, -비 세계일 뿐이다”(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76)

    장숙의 다기, 식물, 책상, 걸레, 문 등 우리의 조건이었던 사물들을 떠올립니다. 무능한 듯 정지한 사물을 돌보려 했으나, 외려 돌봐진 건 누구()였고 나였습니다. 장소와 사물을 통해 우회해서, 우리의 어떠함을 돌아보고 돌보는 일을 계속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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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泥子 2019.05.10 23:06
    막 더위가 시작되려는 6월 어느 날, 공부모임에서 장소를 마련하고 개숙식을 한다며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속속의 공부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회부터 참석하여 50회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시작하자마자 빨려들듯이 집중하게 되었던 속속 공부는 그동안의 허영을 걷어내고 '자기 관찰이 절망적으로 불가능한' 바로 그 곳에 다시 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인간만이 절망'인 세상에서 '타인에게 물잔을 건넬 수 있는'지를 묻고 그것을 건네는 이 곳에서 '손과 손에 얹히는 물리적 신뢰를 경험'합니다. 이 곳이 '사람과 사물들이 긴 노동과 응하기의 이력과 함께 어울려 내려앉은 웅숭깊은 자리가' 되어가는 그 중에 만나 함께 하고 있음에 그리고 선생님과 숙인들께 감사합니다. 길게 이어지는 공부의 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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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물시 2019.05.11 01:14
    그냥, 장숙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돌이켜보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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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운영 2019.05.11 15:36
    1. 뜻밖의 순간에 찾아와 누군가의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속속 공부는 제 인생의 커다란 '사건'입니다. 2주에 한번 가는 공부이지만, 처음 발걸음 했을 때부터 제겐 매일 매일이 공부의 연속이였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절망을 보는 아픈 공부였습니다. 선생님과 숙인들이 보여준 '존재'의 비평이 있었기에, 애쓰는 와중에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보는 쾌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공부였습니다. 50회를 기념하는 공부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2. '젠더를 해결하려면 젠더를 가시화하는 동시에 젠더를 넘어서야 한다' (정희진, 낯선시선, p14)
    사회적 약자로 위치 지워지는 여성주의에 대해 늘 뭔지 모를 아쉬움을 갖고 있었는데요, 이미옥님의 50회 속속 기념특강은 아쉬움 대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상처받은 자로서 자신을 (알아) 볼 것, 그러나 상처 때문에 괴물이 되지는 않은 채로 자신의 상처를 볼 것' ' 자발적으로 상처받고 자발적으로 퇴행하는 그 길' 이라는 말들은 언어화 되지 않은 나의 생각들과 만난 것 같아 반갑기도 했습니다. 9페이지나 되는 정성스런 글은 그 자체로 울림이었습니다. 이미옥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오늘도 제 몫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지는 싸움을 통해 만나게 될 '나보다 더 큰 나'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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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불이 2019.05.11 22:19

    1. 속속의 공부가 어느덧 50회를 맞이 하고 보니 1년여의 일들이 아득하게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저의 에고를 들여다보며 절망하던 시간들, 또한 선생님과 숙인들로 인해 배워가며 저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던 시간들, 미래의 저를 기다리며 느리지만 오늘도 반걸음 걸어갑니다.
    2. 이미옥님의 여성 주체학을 듣고....
    "남성-노동자" "여성 -소비자" 라는 각자의 젠더 경제 속에서 제 역활을 다함으로써 남성 지배를 공고히 만듭니다.
    여성이 처한 조건들이 여성의 성 역할에 우리가 갇혀 있으므로 인해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이 뼈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소비의 주체가 아닌 여성 자신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일까? 기본 소득제도 결국 '소비할 수 있는 인간들'의 개발이라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자본주의 체계속에서 우린 소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소유냐 존재냐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 삶은 존재로 살기엔 너무나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주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들 ... 변덕과 허영 사이비 주체성.
    여성이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우리가 처한 위치로 인해 상처와 절망을 바라볼 수 있고 그걸 통해 피어날 어떤것들을
    희망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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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초 2019.05.12 20:45
    속속 30회부터 참석하여 여기까지 걸어 왔습니다.
    선생님과 숙인들과 함께 해오며, 다른 삶을 향해 나 있는 볕이 잘 드는 작은 창을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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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진 2019.05.12 23:41
    미옥님의 강의를 듣고, 속속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숙인들 모두가 저마다의 세계와 언어를 조형해가며, 강의와 담론이 쉼 없이 피어날 속속의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

    50회가 되기까지 힘써주신 속속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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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O 2019.05.14 11:28
    *선생님과 숙인께 배운점
    -의견개진시 낮은 목소리와 절제된 언사, 또렷한 내용전달과 침착함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자기자신의 말에 감동받아 흥분하지 않는 점도 배울점으로 생각됩니다.
    -속속공부가 진행됨에 따라 일취월장하는 숙인의 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외유내강하는 숙인으로서 겉모습은 부드럽고 여린 감정을 보이나,발제나 글과 말에서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숙인의 말씀 하나하나를 기록하는(하려는) 태도에 감명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