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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11:33

Rudolf Otto(1869~193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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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gibt viel Unheimliches, es gibt nichts Unheimlicheres als den Menschen.


-성스러움(das Numinoese)은 종교영역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가치이며, 이는 합리적인 것을 벗어나고 개념적 파악으로는 전혀 접근할 수 없는 하나의 不可言的인 것이다. 이 말에서 연상되곤 하는 '도덕성'은 부차적인 뜻일 뿐이며, 가령 '의무감의 동기에서 흔들림이 없이 도덕적 법칙에 복종하는 의지'(칸트)를 성스러운 의지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그것은 단지 완성된 도덕적 의지일 뿐이다. 


-누멘적인 것은 구원의 믿음, 신뢰나 사랑 따위의 부차적 요소와는 별도로, 우리 속에서 종종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우리를 흔들고 사로잡는다. 이는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 혹은 무서운 비밀의 힘이다. 이것은 갑자기 저돌적인 충격과 경련을 일으키며 영혼으로부터 폭발해 나오기도 하며, 때로는 이상한 흥분과 도취, 환희와 황홀경으로 이끈다. 미친 듯한 악마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으스스할 정도의 소름과 전율로 하락하기도 한다. 그것은 신비적인 전율이며 이를 느끼는 자 안에서 부수적 감정으로서 피조물적 감정이 생겨난다. 곧 자신의 무성(無性)에 대한 감정이요, 공포 속에서 객체적으로 체험된 두렵고 위대한 것 자체 안에서 느끼는 자신의 함몰감이다. 이는 윤리적 속성과는 무관하며, 이른바 '자연의 숨겨진 힘'과도 같이, 혹은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자는 누구든지 감전시키는 축적된 전기와도 같이 진노는 타오르며 종잡을 수 없이 나타난다. 이것은 공포로 충만케 하는 이상한 압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신에 대해서 단지 선함과 자비와 사랑 등 요컨대 인간에 친숙한 요소들만을 인정하고자 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방해가 되는 요소다. 


-신, 혹은 어떤 대상에 대한 참된 지식을 산출하는 '예감'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은 또 다른 근심을 드러냈다. 요제프 가이저는 종교적 선험성에 대한 오토의 옹호가 갖는 인식적-지성적 차원이 느낌과 지식을 혼동하며 본체적 현실의 참된 예감과 거짓된 예감을 구별하는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토가 심리주의를 피하는 데 있어서 슐라이에르마허나 윌리엄 제임스보다 더 나아갔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카를 파이젤은, 결국 범주로서의 누미노제는 형용모순(contratictio in adiecto)라 비판했다. (<경험의 노래들>, 마틴 제이)


-누멘적인 것의 내용은 위압적이고 압도적인 두려움(tremendum)의 요소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독특한 힘으로 끌어당기고, 매료하며, 매혹하는 어떤 것으로서, 이제 위압적인 두려움의 요소와 더불어 하나의 묘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귀신이나 신은 우리의 마음에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공포적인가 하면 또한 그렇게도 유혹적이고 매력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신비는 단순히 놀라운 것(Wunderbare)만이 아니라 또한 경탄스러운 것(Wundervolle)이기도 한 것이다. 


-누멘적인 것은 선험적 요소다. 이런 점에서 종교란 윤리(ethos)나 목적성(telos)의 종속 하에 들어가지도 않으며, 요청들(Postulaten)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의 비합리적 요소 역시 인간 정신 자체의 숨은 깊이 속에 그 자체의 독자적인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현상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면서, 빛바랜 현상에 대해서 참신한 시각을 촉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름 붙이기는 단순히 새로운 언어적 명명 이상의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이름 붙여진 대상을 새롭게 보게 한다. 종교학의 역사에서 그러한 새로운 이름 붙이기를 통해서 종교라는 오래된 현상에 새로운 의미의 뉘앙스를 준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다. 본고에서 다루는 루돌프 오토(1869-1937)의 경우가 그 중 하나이다. 그가 종교학사에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종교를 지칭하는 참신한 언어 사용으로 성스러움이나 신과 같은 활력 없는 용어를 대체하면서 옛 이름에 덮여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징적인 면들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조직 신학자였던 루돌프 오토를 일약 세계적인 종교 철학자로 유명하게 만든 책 한 권은 『성스러움. 신관념에서 비합리성과 그것이 합리성과 갖는 관계(Das Heilige. Uber das Irrationale in der Idee des Gottlichen und sein Verhaltnis zum Rationalen)』이다. 일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7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팔리고 널리 읽힌다는 의미에서 성공한 종교 이론서이다. 이 책에서 오토는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인간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최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