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하
/
선생님께서 ‘안다’, ‘된다’, ‘돕는다’ 중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된다’는 것은 행위의 반복을 통해 말의 개입이 부재한 ‘알면서 모른 체하기’로 응(행)할 수 있는 전환점을 얻어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알면서 모른 체하기’로 응(행)할 수 있어야 진정 익혀 알게 된 것이고, 중뿔나게 나서지 않아도 존재론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된다.




여일
/
하루 늦게 참석하게 된 장숙행이라 조바심을 안고 백제의 옛고을이었던 부여로 향하였다. 부여에 다다르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며 과거의 백제인으로 돌아간 듯 잠시 즐거운 환상에 젖는다.
장숙행에서 좋아하는 시간은 오전 공부 시작하기 전이다. 낯선 장소에서 일어나 선생님과 동학이 모여 간단한 아침식사와 차담을 나눈다. 이 시간은 몸과 정신이 적당하게 준비되어 적당한 말들이 오간다.
적당한 시간에 선생님은 처음 들어본 듯한 말씀을 하신다. ‘사물을 보아도, 사람을 보아도 밖을 보면서도 나는 동시에 속을 바라본다’. 사비한옥에서 아침식사와 차를 마시며 누리는 대화는 충만하다.


유재
/
이번 장숙행 공부의 형식은 1분 적경, 2분 적경, 단중, 3분 적경, 교재 공부, 주천, 우보, 복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몸 공부에 방점을 두고 이번 장숙행에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배운대로, 단전을 활성화(activation), 즉 감각화하고, 이를 패턴화하여 낮은 중심을 갖는다는 맘-몸으로, 임해보려 했다. 아직 한 번도 단전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와 수행을 배치하는 것은 매우 창신(創新)한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단중 직후 3분간 적경을 하니, 전에 없던 기미(幾微)가 찾아왔다. 내 몸에 찾아 온 이 느낌을 아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후 이 느낌을 붙들고 새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가능성이 생겼다. 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해주신 다음 이야기를 더불어 쟁인다: 이것은 의식 및 에고를 잡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내가 알면 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러나 온 힘과 최선을 다해 알고자 하고, 매번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로써 다시 시작하 면서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내게 이것은 몸-맘을 통해 대학의 길과 수행의 길을 접합시키려는 현장이었다. 학교 수업에 들어 있으니 수행 심처(深處)가 더욱 아득해진다. 하지만 선생님을 '모방'하고 선생님께 '배우며' 그 '사이'를 가고자 한다. 이번 장숙행은 그 '사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연습하고 현현시킬 수 있는 깊고 감사한 기회였다.


부여 정림사지오층 석탑(백제 5층 석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