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에 드러난 1910년대 후반 조선의 人情, 습속, 제도, 삶의 정서
1910년대는 조선의 전통과 서양 문명이 충돌하는 과정 속에 차츰 근대적 시공간이 탄생하며 그 권력의 기울이가 서양 문명으로 이동해 가는 과도기였다. 이 시기에 일본은 사회 전반에 걸쳐 각종 제도적 규제와 간섭을 하기 시작한다. 또한, 조선인들이 서양 문명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일본의 번역을 거쳐 중역(重譯)된 서양 문명의 이식을 통해 식민지 공간을 담론화하고 있었다. 『무정』이 연재된 매일신보는 유일한 중앙지로서 근대적 담론을 유포하는데 중요한 매체적 역할을 한다.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 시 사 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리쪼이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 장로의 딸 선형이가 명년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고빙하여 오늘 오후 세 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라. 이형식은 아직 독신이라”(1, 7p, 민음사)
『무정』의 도입부다. 1910년대는 조선의 전통 문화와 일본에서 전수된 서양 문명이 착종된 사회문화적 환경이었다. '신구사상의 충돌'(79, 344p)이다. 인용한 문장의 학교, 영어, 교사, 장로, 미국 유학, 가정교사, 오후 세 시 등속의 어휘들은 근대적 시공간을 표상한다. 차츰 식민지 내 권력의 이동은 근대적 시공간을 장악한 '서울 장안의 문명하였다는 계급'(104, 445p) 즉, '젊은 사람의 손으로'(62, 272p) 이동한다.
* 학교: 근대적 교육
한일합방 이후 1911년 「조선교육령」에 따라 교육제도가 새롭게 정비된다.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실업학교 및 중학교 등이 중등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형식이 영어 교사로 재직한 경성학교는 고등보통학교에 해당하며 선형이 우등으로 졸업한 정신여학교는 여자고등보통학교에 해당한다.
‘고등보통학교는 남자에게 고등한 보통교육을 하는 곳’이라 규정하고 교육목표를 ‘상식을 기르고 국민(일본인)된 성격을 도야하며 그 상황에 유용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친다.’라고 설정하였다. 수업연한은 4년으로 하고, 입학자격은 12세 이상의 수업연한 4년의 보통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 학력 이상자로 규정하였다.
교육정책 속에 여성들을 적극 포함시키기 시작한 것은 1908년부터다. 1차 「조선교육령」(1911년)이 공포되면서 여성교육의 체계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교육은 남성교육과는 달랐다. 여성교육은 4년 과정의 보통학교와 3년 과정의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실시되었다. 보통학교 졸업 후 진학하는 중등과정의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실시된 교육내용은 지식교육을 억제하고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에 치중한 기예 교육 중심이었다. 이러한 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육 수준은 편지를 쓰고 신문을 볼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정도였다.
1차 「조선교육령」은 관립 외국어학교를 없애고 영어교육을 제한한다. 이 시기 여자고등보통학교의 영어 과목은 폐지되었다가 2차 「조선교육령」(1922년)에 영어교육이 가능해진다. 선형의 영어 과외는 이런 일제의 규제에 기반을 둔다.
* 유학: 근대적 문명 계급
소설 속에서 선형과 형식은 미국 유학, 병옥과 영채는 일본 유학에 오른다. 한일합병 후 한국인의 구미 유학이 허용되지 않아 도미의 기회 자체가 거의 봉쇄되었다. 통감부총계연보 집계에 따르면, 1910년대 한국에서 총독부 여권을 가지고 도미한 유학생의 수는 미국 본토 26명, 하와이 1명에 불과하다. 선형과 같이 총독부 여권을 지닌 채 미국 유학을 가는 여성은 기독교 학교(정신, 숭의, 이화) 출신으로 연평균 한 명이나 가능한 극히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는 일본의 제재에 더해 미국 이민당국이 학생 및 여성들의 입국에 제약을 가했기 때문이다. 1914년 9월부터 이민국 조례를 만들어 학생과 여성에게 증서를 요구했다.
일본 유학은 미국 유학에 비겨 그 수가 많았지만 여학생의 경우는 드물었다. 1900년대 초기까지도 여성의 일본 유학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어서, 1909년 무렵 일본에 있었던 212명의 한국 유학생 중 여학생은 9명에 불과했다. 한국 여성의 일본 유학이 증가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부터였다. 전체 일본유학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지만, 1910년대는 대략 30-40명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병옥과 영채는 이 30~40명에 해당한다.
* 교사: 식민지 지식인의 인정투쟁
근대적 교육이 시작되며 교사와 학생이 출현한다. 식민지 지식인인 형식은 일본 유학을 거친 영어 교사로서 식민국에서 배운 서양 문명을 식민지의 제도화된 학교에서 가르친다. 식민지 시대의 근대적 교육은 문명을 배우는 것에 치중된다. 제도 교육에서는 전통적 교육이 강조한 전인적 성숙보다 지식과 기능의 습득이 돋을새김된다. 지식과 기능의 강조는 소설 속 묘사처럼 교사와 학생 사이의 예라는 형식을 무너뜨린다. 사회 진화론이 공대의 정신을 삼키게 된다.
소설 속 형식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이 지닌 조건과 한계로 인정투쟁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형식은 '예수 믿은 지는 오래나 워낙 교회에 뜻이 없'(2, 12p)어 초월적-종교적 인정투쟁에 실패했으며,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조건과 한계로 현존 지배체제 속에서의 상향적 인정투쟁이 부재할 수 밖에 없었고, 자유 연애가 어려웠던 시대의 독신이었기에 연정이라는 이성 간 인정투쟁도 부재했으며, '학문의 정도 차이'(67, 289p)로 '소년 시대를 건너뛴'(67, 289p) 그로서는 수평적 교우의 인정투쟁도 실패했다. 그가 교사로서 전심력을 다한 학생을 향한 인정투쟁의 실패는 그에 맞물린 보상의 위기 속에 자기 환멸에 이르게 된다.
* 하이칼라: 식민지 지식인이 바라본 조국
“실로 형식에게는 시철 하이칼라 처자의 애정을 끌 만한 아무 힘도 없다.”(2, 12p)
'하이칼라'라는 표현을 보면 형식이 김 장로의 집안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910년대의 하이칼라란 주로 사람을 수식하거나 어떤 특정 성향을 지칭하는 말로 부정적 함의로 활용되었다. 형식의 말로 하면 서양의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며 흉내만 내는 사람에 해당되겠다.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 문명을 체화했다고 여기는 형식은 전통 문명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서양 문명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류를 모두 비판한다. 그가 식민국에서 배운 서양 문명이 최종심급으로서 작동하지만 그가 속한 땅은 타율적 근대화가 졸속으로 진행되며 전통과 근대가 착종될 수밖에 없었다.
하이칼라의 어원은 메이지 30년대 메이지 시대 남자 양복으로서 유행한 하이칼라의 셔츠, 즉 와이셔츠의 깃에서 유래하였다. 마이니치신문의 컬럼니스트가 1898년 무렵 이 용어를 지면에서 사용하였다. 당시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치가이자 관료를 “태서풍의 칼라를 높이 올려서 잰 체하며 마치 방금 일본에 귀국한 것처럼 보이려는 것 같아 거슬리기 짝이 없다”라고 비판한 데서 비롯했다. 메이지 시기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는 정치가, 실업가, 고급 관원 등속의 지극히 소수의 상류계급들에게만 한정된 채 권위적이고 과시적인 소비형태로 확대되게 되었다. 하이칼라라는 말은 최초에는 이러한 상류층의 소비형태를 비판하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하이칼라라는 말이 조선에 유입된 시기는 최소한 1910년 전후로 보이는데 1910년대 신문과 소설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 가정: 근대적 가족의 탄생
1910년대는 '가정'이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매일신보》에는 가정 담론이 활발하게 부상했고 1915년 9월에는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가정 박람회>가 조선에서 개최되었다. 박람회에서는 "방 세 칸이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 주인내외와 남매가 등장하는데 남자주인은 안석에 의지하여 신문을 읽고 있고 아들은 그 앞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부인은 딸과 함께 바느질을 하는" 마네킹의 모습이 조선 상류층의 가정의 모습으로 진열돼 있었다. 1910년대 일본과 조선에서는 가정이란 사적 공간으로서의 근대 가족을 완성하는 이데올로기를 담론화하는데 열중하였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드러나는 것처럼 1910년대 실제 상류층 가정의 공간은 전통과 서양 문명이 혼재된 채 과도기적 중층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김 장로 집은 한옥을 반양식으로 개조한 집이었고, 김 장로 집에 유숙하는 순애나 병옥의 집에 유숙하게 된 영채는 근대적 가정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전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 혼인 제도: 근대화의 단초
1900년을 전후로 이광수를 비롯해 식민 지식인들이 자유 연애와 자유 결혼을 담론화하였다. '조혼', '부모에 의한 강제 결혼', '과부의 수절', '남존여비' 등속의 전통적 결혼 형식을 비판의 대상으로 부각하고 당자의 의사에 따른 자유로운 배우자의 선택을 중요시했다. 자유로운 배우자의 선택은 전통적 가족을 '가정'이라는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개편하여 사회의 기초 단위를 재정립하는 근대화 과정의 단초였다.
그럼에도 1910년대는 자유 연애가 담론화되던 시기였던 만큼 현실이라는 실지적 환경은 담론을 소화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다. 먼저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여성의 교육이 1908년부터 실행되었다. 1910년대 여성의 학교 진학률은 4%에 불과하였고 교육의 내용은 기예 교육에 치중되었다. 병국과 형식이 말한 '영육을 합한 전 인격적 사랑'(98, 418p)을 나눌 병옥과 같은 여학생은 주위에서 쉬 찾기 어려웠고, 자유 연애를 위한 사회문화적 공간도 마련되지 않았다. 형식과 선형의 혼인은 김 장로 집에서 두 번(두 시간)의 만남을 거친 후 '장난 모양'(83, 360p)으로 진행된 약혼이었다.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형식의 약혼은 신식 혼인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부모에 의한 강제 혼인에 불과했다.
소설 속 김병국의 아내와 신우선의 아내는 두 사람보다 나이가 많다. 김병국의 처는 오 년 연장이고 우선의 '나이는 불과 이십오륙 세'(37, 168p)이니 역시 처가 4~5세 연장이다. 부모에 의해 조혼을 치렀을 것이다. 병국은 열두 살, 우선은 십오륙 세에 혼인을 치른 셈이다. '한번 부부가 된 이상에는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할 의무가 있다 하여 예수교적 혼인관'(98, 418p)을 지닌 병국은 아내에게 받지 못하는 정신적 위안을 동생 병옥에게서 구해 보지만 '누이의 사랑에는 한정이 있다'(97, 417p)며 영육을 합한 전인격의 사랑을 말한다. 반면 전통적인 일부다처주의를 옹호하고 '아내에게서 못 얻는 재미는 기생에서 얻으면 그만'(110, 468~469p)이라고 말하던 우선은 정신적 융합이 없는 '기생의 조금(큰) 부족한 점'(110, 469p)을 말하며 영채가 자신을 사랑해 주면 기생집에 가기를 그친다고 말한다.
* 기생: 사적 욕망의 담론화
소설에는 영채 외에도 많은 기생들이 등장하고 언급된다. 영채가 열두 살에 평양에 유숙하며 만난 기생들, 영채의 기생 어머니인 노파, 정절을 잃고 영채가 자살로 뒤좇고자 하는 월화, 형식이 평양에서 만난 어린 기생 계향과 그 어머니를 비롯해 선형의 어머니는 ‘부용’이라는 유명한 평양 기생이었고, 형식의 서조모는 기생 출신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궁중과 지방 관청에 소속된 관기가 해고되었고, 1907년 궁중에 남아있던 관기제도마저 전면 폐지되었다. 기적에 오르면 천민 신분이 세습되는 제도도 사라졌지만 장안의 기생 수는 외려 증가한다. 장안 토박이 기생과 더불어 진연에 발탁된 후 자신의 고장으로 돌아가지 않은 지방 출신의 기생들이 기생 조합을 구성하며 여러모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매체가 기생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소개 및 소비시키면서 지방에서 유입되는 기생과 신규 유입되는 기생들이 더욱 증가한다.
왕실의 몰락으로 민간 연회를 주도하던 예인집단의 공연 규제는 연회 공간의 상실과 함께 전통연회 계승에 큰 차질을 부른다. 전통예술계의 위축과는 달리 요리점과 기생 조합을 매개로 일본의 고위 관료층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기생 집단은 다른 예인 집단에 비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 받으며 예술의 상업화와 통속화(대중화)를 확산시켜 나간다. 각종 문화 행사에도 기생이 체계적으로 동원되는데 《매일신보》는 이를 기사화하고, <예단일백인>이라는 연재로 기생의 삶을 소개하며 식민지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소비시킨다. 기생의 소비와 함께 요식업과 공연장이 활성화되며 1910년대 이후 기생조합의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미 삼패 중심으로 구성된 한성조합은 관기 출신 유부기로 재구성하며 광교조합으로 개창하고, 1913년에는 평양 무부기를 중심으로 다동조합이 만들어진다. 소설 속 다동 기생은 이와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다.
발제문을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