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글을 읽으며 사반세기를 다 보낸 듯합니다. 언제던가요. 2012년 겨울, 직전 『기독교사상』에 연재했던 『당신들의 기독교』가 출간되고 이후 5년 가까이 “글 뒤에 숨은 글”(김병익)을 쓰신 적이 있었지요. (결코 ‘절필’이란 단어를 쓰고 싶진 않습니다.) 매년 책을 펴내던 작가가 글쓰기(책)를 멈출 때 독자는 으레, 그리 짐작합니다. 그럴 때면 『고전평설』이나 『보행』을 다시 읽을 수밖에요. 읽지도 않을 거면서 당시 그 숱한 출퇴근길 가방 안 『동무론』 또는 『사랑, 그 환상의 물매』는 제 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집중과 영혼』이 나오기까지 중년의 사내에게 5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닌 게 선생님의 봄날이 간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다시읽기’와 ‘들고다니기’의 완결편은 『봄날은 간다』였습니다. 5년 동안 쏟은 커피며 빗물 따위로 책은 너덜거렸고, 한 시인(봉주연)의 말(“우리의 건망증 때문에 내년에도 봄이 올 거예요”, 「신앙」)에 기대자면, 다섯 번의 봄을 그런 식으로 떠나보냈지요. 관훈갤러리 골목을 빠져나와 인사라운지 앞 간이벤치에 앉아 강연시간을 기다리며 구입한 시집(봉주연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을 조금 읽었습니다. 시집을 읽는 동안 제 타임라인은 다시 2017년으로 향하고 전 경구 하나를 떠올려야 했습니다. 새싹은 피어날 명분을 갖기 위해 새들이 씨앗을 숨겨놓는다는 걸 자주 잊어야 합니다.(“새들은 씨앗을 숨겨놓았다는 걸 자주 잊고/ 새싹은 피어날 명분을 갖습니다”, 봉주연 「신앙」) ‘새싹’과 ‘새’ 그리고 ‘씨앗’ 사이에 숨어 있는 함수를 찾아야 하는데 5년(2012-2017) 동안 그 셋은 각자도생했고 전 모르쇠로 일관해야 했습니다. 제가 겨우 찾아낸 ‘명분’이 ‘건망증’이였으니 오늘 구입한 봉주연의 시집을 읽으며(“우리의 건망증 때문에 내년에도 봄이 올 거예요”, 앞의 시) 의미도 모른 채 견딘 5년이란 시간이 ‘건망증’을 에두른, 실상 “알면서 모른 체하기”에 이르는 (적어도 제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 참석자 이ㅈ현 님의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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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을 읽으며 사반세기를 다 보낸 듯합니다. 언제던가요. 2012년 겨울, 직전 『기독교사상』에 연재했던 『당신들의 기독교』가 출간되고 이후 5년 가까이 “글 뒤에 숨은 글”(김병익)을 쓰신 적이 있었지요. (결코 ‘절필’이란 단어를 쓰고 싶진 않습니다.) 매년 책을 펴내던 작가가 글쓰기(책)를 멈출 때 독자는 으레, 그리 짐작합니다. 그럴 때면 『고전평설』이나 『보행』을 다시 읽을 수밖에요. 읽지도 않을 거면서 당시 그 숱한 출퇴근길 가방 안 『동무론』 또는 『사랑, 그 환상의 물매』는 제 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집중과 영혼』이 나오기까지 중년의 사내에게 5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닌 게 선생님의 봄날이 간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다시읽기’와 ‘들고다니기’의 완결편은 『봄날은 간다』였습니다. 5년 동안 쏟은 커피며 빗물 따위로 책은 너덜거렸고, 한 시인(봉주연)의 말(“우리의 건망증 때문에 내년에도 봄이 올 거예요”, 「신앙」)에 기대자면, 다섯 번의 봄을 그런 식으로 떠나보냈지요. 관훈갤러리 골목을 빠져나와 인사라운지 앞 간이벤치에 앉아 강연시간을 기다리며 구입한 시집(봉주연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을 조금 읽었습니다. 시집을 읽는 동안 제 타임라인은 다시 2017년으로 향하고 전 경구 하나를 떠올려야 했습니다.
새싹은 피어날 명분을 갖기 위해 새들이 씨앗을 숨겨놓는다는 걸 자주 잊어야 합니다.(“새들은 씨앗을 숨겨놓았다는 걸 자주 잊고/ 새싹은 피어날 명분을 갖습니다”, 봉주연 「신앙」) ‘새싹’과 ‘새’ 그리고 ‘씨앗’ 사이에 숨어 있는 함수를 찾아야 하는데 5년(2012-2017) 동안 그 셋은 각자도생했고 전 모르쇠로 일관해야 했습니다. 제가 겨우 찾아낸 ‘명분’이 ‘건망증’이였으니 오늘 구입한 봉주연의 시집을 읽으며(“우리의 건망증 때문에 내년에도 봄이 올 거예요”, 앞의 시) 의미도 모른 채 견딘 5년이란 시간이 ‘건망증’을 에두른, 실상 “알면서 모른 체하기”에 이르는 (적어도 제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