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강 53회
이번 강의는, 지난 1년간의 강의원고를 수록한 강의집 <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글항아리, 2025)의 출간에 즈음해서 그간의 논의를 종합하고자 조금 다른 구성으로 진행합니다. 관례대로 하나의 정한 주제 아래 내 생각을 펼쳐보이는 대신, 지난 수년 간 장숙강에 참여한 분들로부터 질문을 구하고 이에 대한 내 답변을 재구성, 재서술합니다. 대면 관계에서도 늘 ‘응해서’ 말하기를 강의의 원칙으로 정해 실천하였지만, 이번 연말 강의에서도 독자ㆍ후배들의 관심과 탐문에 응해 쓰고 말하면서 교학상장의 모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말이든 글이든 응하기에는 우발적인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고, 어떤 이들은 이를 ‘글ㆍ말의 계시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크게 대별하자면 우발적 창의성의 길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내가 긴 세월 조금씩 탐색한 바 있는 ‘창의적 퇴행(성)’인데, 이는 무(無)의식의 무(無)한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진정한 실력과 진정한 신성(神性)의 기별이 솟아나는 곳이기도 하지요. 허무와 냉소와 오연(傲然)이 영영 발붙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가 바로 글ㆍ말의 계시성으로서,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타자의 지평이 선사하는 습득물입니다.
공부란 우선 말을 섞는다는 것입니다. 섞이는 중에 서로 엉키거나 난반사하면서 과거와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 무의식의 전체를 건드리기도 합니다. 건드려진 것들은 여러 표상의 체계를 거쳐 나오면서 인간의 말로 안정화되는 법인데, 더러 쉽게 안정화되기 어려운 것들조차 그 표상의 벽을 뚫고 나옵니다. 바로 이것이 계시의 기별이자 좋은 상상력이 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타자와 신의 음성을 엿듣는 은혜를 입습니다. ‘응해서 말(답)하기’란 성가시고 집요한 노동을 요구하면서도, 이처럼 멀리서 밝아오는 희망을 영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2025년 12월 27일(토) 오후 3시
<인사라운지>, 인사동 9길 31, 2층/ 종각역 3-1출구 도보 3분
3~5만원(학생/취준생 1만원) *茶와 간식이 제공됩니다.
신청 및 문의
010-9427-2625(는길)
010-7150-5441(단빈)
010-8454-6563(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