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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는길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만두와 몽양: 길 없는 길

이번 속속 식탁의 메인 메뉴는 떡만두국입니다. 만두소 재료에 당면을 준비하게 된 아무의 잡채가 함께 상에 올랐습니다. 그 맛은 새벽 이슬을 사람의 온기로 품은 맛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잡채를 만들어 온 아무의 노동에 감사를 표합니다. 만두 빚는 일에 도움의 손길을 모아준 동학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실 이번 메뉴에는 숨은(?) 조력자(주 요리사)가 따로 있습니다. 활기를 되찾은 '미인(k 선생님)'의 손맛이 듬뿍 담겨 만두에도 탱탱한 생기가 돋습니다. 만두소에는 소고기 다짐육, 돼지고기 다짐육, 당면, 부추, 숙주, 계란, 두부, 양파, 대파 등속이 들어갔습니다. 만두는 물이라는 매개 없이 갖은 재료가 융합되고도 맛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남은 몇 안되는 음식 중에 하나입니다. 만두를 매개로 융합과 조화를 언급하니 같은 길을 걷고도 다른 운명을 맞이한 이번 속속 교재로 읽고 있는 몽양 선생이 떠오릅니다. 

몽양 선생은 격변하는 시기에 ‘아직은’ 없는 ‘길 없는 길’을 걷고자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동무’라는 아직은 없는 개념을 타자에게 이해시키는 어려움을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몽양 선생이 해방 후에 가고자 하셨던 ‘좌우합작의 길’도 매한가지로 좌우라는 양쪽을 납득시키기 어려웠을 성싶습니다. 융합은 달리 말하면 겹침을 찾는 일입니다. 그러나 도그마를 지닌 이데올로기는 배타성을 기반으로 타자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종교와 같습니다. 이념마저 없는 보수는 욕망의 기울기를 따를 뿐입니다. 몽양 선생이 가고자 하신 길은 타자성의 겹침을 이뤄 내는 융합과 조화의 길이었기에 도그마를 기반으로 운신하는 이데올로기와 일차원적 욕망을 넘어서는 정신적 도약을 요구합니다. 몽양 선생의 길을 이상주의라 비평하는 사유가 여기에 있겠지만 정신적 융합과 이상은 엄현히 다릅니다. 

그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몽양 선생은 자신이 지닌 인품과 실력으로 살찌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불가능성을 가능성의 지평까지 끌고 간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을 가능케 한 도움의 주체가 당시의 적인 일본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몽양 선생이 지닌 인품과 실력을 인정하고 공대한 주체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한청년당을 거쳐 임시정부를 위시로 여러 조직에 적을 두고 활동한 몽양 선생은 자신의 실력(현명함)이 권력 투쟁 과정에 묻혀 수용되지 못함으로써 조직 장악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반해, 적국에서 펼쳐진 연설과 대담에서는 몽양 선생의 실력 앞에 패배를 인정하고 공대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그의 국내/외 위상이 제고되는 변화를 겪습니다. 이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사의 나라가 지닌 문인상경의 폐해로 보입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말로써 이루고자 한 융합과 조화라는 몽양 선생의 길은 만두와 다르게 도그마(욕망)를 뒤집어쓴 총 앞에 멈추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