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박한 삶 높은 생각은 이제 사라졌고,
지난 시대의 미덕이 가졌던 소박한 아름다움도 가버렸네.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 are no more:
The homely beauty of the good old cause is gone;
- W. Wordsworth, "Written in London. September,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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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생활 적은철학 낮은공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떠오른 문귀가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이었다. 장숙에서 '노란책'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 며칠 전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검은책'이 떠올랐다.
중 2,3 무렵 다니던 교회 집사님 댁에서 책표지가 그냥 까만 책을 보았다. 특이해서 펼쳐보니 문장도 뻣뻣하고 내용도 어려웠다. 하지만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훗날 그 책은 함석헌 선생이 번역하신 지브란의 "예언자"이며 별명이 '검은책'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 즈음부터 '검은책'은 나의 애독서가 되었는데 키 낮은 '노란책' 또한 애독서이자 지남서로 등재되었다.
(3)
나는 (그) 책을 샀고,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빵과 버터만으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이 "티불루스"의 마지막 장에는 연필로 "1792년 10월 4일, 완독”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의 100년 전에 이 책을 소유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The book ("Tibullus") was bought and I went home with it, and as I made a dinner of bread and butter I gloated over the pages. In this Tibullus, I found pencilled on the last page: “Perlegi, Oct. 4, 1792.” Who was that possessor of the book, nearly a hundred years ago?
그 밖의 다른 말은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그가 가난한 학자였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도 나처럼 가난하고 책을 좋아해서, 그에게는 피 같은 돈으로 이 책을 사서 읽으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냥 즐거워했을 거라고.
There was no other inscription. I like to imagine some poor scholar, poor and eager as I myself, who bought the volume with drops of his blood, and enjoyed the reading of it even as I did.
(2)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시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단 말인가!
天何不仁之甚!我死汝生,理之所常。汝死我生,何乖理之甚!
- 李舜臣, 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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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未堂, 푸르른 날
(1)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
事來心始現
事去心隨空
- 洪自誠, 菜根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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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hink of an elephant!”
(‘코끼리야, 제발 좀 사라져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