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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아버지 

하나. 루스템 

"오, 세상에, 내가 바로 루스템이란다. 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종말이 왔음을 깨달은 소랍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면서 말했다.
"이렇게 된 것은 내 잘못이에요. 이제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패배하였다고 조롱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헛된 영광을 얻으려 한 게 아니라, 내 아버지를 찾으려고 서둘렀던 것이에요. 어머니가 나에게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알려 주었고, 나는 아버지를 만나려는 열망을 좇다가 죽는 것이지요. 이제 나의 고통은 헛된 것이 되었어요. 아버지의 얼굴을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감히 말하건대, 당신이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다고 해도, 천상의 가장 높은 곳에 숨겨진 별이 된다고 해도, 나의 아버지가 당신을 찾아내서 나를 죽인 데 대한 복수를 할 것이고, 그때가 되어야 내가 땅속에서 편안하게 잠들 거예요. 내 아버지는 펠리바 루스템이니, 내 아버지에게 그의 아들 소랍이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어 모험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 주세요."
순간 루스템의 손에서 칼이 미끄러졌다. 그는 절망에 몸부림쳤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비탄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들 옆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끼면서 통곡했다. 루스템이 말했다.
"네가 루스템의 증표를 보여 주면 네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을...
오, 세상에, 내가 바로 루스템이란다. 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소랍은 억울함과 슬픔과 절망에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 루스템은 소랍의 갑옷을 벗기고 마노 팔찌를 보았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썼다. 참회의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왔고, 슬픔에 잠겨 울부짖었다.
 -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부희령 역, 샤나메, pp.161-162) 

둘. 프리아모스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그에게 프리아모스는 이런 말로 애원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접어든 그대 아버지를.
혹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그분을 괴롭히더라도 그분을
파멸과 재앙에서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래도 그분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날이면 날마다 사랑하는 아들이 트로이아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기를 고대할 것이오.
하지만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아카이오이족 아들들이 왔을 때 내게는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소. 그중 열아홉 명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나머지는 소실(小室)들이 나를 위해 집안에서 낳아주었소.
한데 사나운 아레스가 그들 대부분의 무릎을 풀어버렸소.
그리고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들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얼마 전 그대 손에 죽었소.
그래서 나는 그 애 때문에 그대에게서 그 애를 돌려받고자
헤아릴 수 없는 몸값을 가지고 지금 아카이오이족 함선들을
찾아온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 아버지를 

생각해 나를 동정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동정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 호메로스/천병희 역, 일리아스, pp.700-701)
---
아버지가 된지 40여년이 되었는데도 모르겠다.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태어난지 70여년이 되었는데도 어떤 게 제대로 된 사람 노릇인지를 모르니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삶이란 애시당초 본 게임 없는 연습 게임이런가?

(6)
일연의 孤帆,
이백의 孤帆.
==

天竺天遙萬疊山 천축 하늘은 멀기도 해라 첩첩이 가린 산,

可憐遊士力登攀 기어오르는 저 선비들 가상도 하여라.
幾回月送孤帆去 저 달은 몇 번이나 외로운 배 보냈던가.
未見雲隨一杖還 구름 따라 돌아오는 그 누구도 못 보았네.
 - 一然, 歸竺諸師 讚 (리상호 번역)
  * 遊士 : 공부를 하기 위하여 외국이나 타향으로 가는 선비.

故人西辭黃鶴樓 친구는 서쪽으로 황학루를 작별하고
煙花三月下揚州 안개 끼고 꽃 핀 삼월 양주(揚州)로 내려간다
孤帆遠影碧空盡 외로운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惟見長江天際流 보이는 건 하늘 끝으로 흐르는 장강뿐

 - 李白, 送孟浩然之廣陵

(5)
음악이 四隣을 이어주는 언어일 수 있을까?
==

홀은 만석이었다. ... 첫 악장은 잘되어 갔다. 음악은 내 클로츠 첼로의 진솔한 울림에 딱 맞게 흘러갔고,  관객들은 나와 함께 하나의 음악을 숨 쉬고 있었다. 음악 속에서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가! 

바로 이 순간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저 멀리서 공연장을 가로지르며 나풀나풀 날아다니다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슈만 협주곡에서 특히 아름다운 중음주법 대목에서는 아예 첼로 위에 앉는 것이었다. 얼마나 곱고 다정한 순간이었는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동시에 집중력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첼로 위에서 음악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을 그 하얀 나비는 악장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날아올라 홀의 넓게 열린 공간을 향했다. 더 높이, 더 멀리, 하이얀 점이 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아가 버렸다.
 - 율리우스 베르그, 이슬 pp.81~82
  * 율리우스 베르그(1954~  ), 독일의 저명한 첼리스트.

(김두수는) 1981년 고려대 농경제학과에 재입학했지만 휴학을 거듭 졸업까지는 6년이 걸렸다. 휴학 중 삿갓에 고무신을 신고 가야산의 한 암자를 찾았다. 50년 된 대나무 피리를 구해 밤낮으로 호숫가와 산중 바위에서 구성진 우리가락을 벗삼아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예쁜 나비 한 마리가 피리 끝에 날아와 앉자 자연과 교감이 느껴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 이때의 영감은 <나비야>의 노래가락으로 이어졌다.

 - 최규성, 보헤미안의 향취... 김두수
 * 김두수(1959~  ), 대구 출신. 1980년대 대표적 언더그라운드 포크 싱어송 라이터.
https://youtu.be/dFV6eYwrMao?si=KjD1J8hwoe54FTwR

(4)

소박한 삶 높은 생각은 이제 사라졌고,

지난 시대의 미덕이 가졌던 소박한 아름다움도 가버렸네.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 are no more:

The homely beauty of the good old cause is gone;

 - W. Wordsworth, "Written in London. September, 1802"

==

"작은생활 적은철학 낮은공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떠오른 문귀가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이었다. 장숙에서 '노란책'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 며칠 전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검은책'이 떠올랐다.

중 2,3 무렵 다니던 교회 집사님 댁에서 책표지가 그냥 까만 책을 보았다. 특이해서 펼쳐보니 문장도 뻣뻣하고 내용도 어려웠다. 하지만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훗날 그 책은 함석헌 선생이 번역하신 지브란의 "예언자"이며 별명이 '검은책'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 즈음부터 '검은책'은 나의 애독서가 되었는데 키 낮은 '노란책' 또한 애독서이자 지남서로 등재되었다.


​​(3)

나는 (그) 책을 샀고,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빵과 버터만으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이 "티불루스"의 마지막 장에는 연필로 "1792년 10월 4일, 완독”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의 100년 전에 이 책을 소유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The book ("Tibullus") was bought and I went home with it, and as I made a dinner of bread and butter I gloated over the pages. In this Tibullus, I found pencilled on the last page: “Perlegi, Oct. 4, 1792.” Who was that possessor of the book, nearly a hundred years ago?
그 밖의 다른 말은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그가 가난한 학자였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도 나처럼 가난하고 책을 좋아해서, 그에게는 피 같은 돈으로 이 책을 사서 읽으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냥 즐거워했을 거라고.
 There was no other inscription. I like to imagine some poor scholar, poor and eager as I myself, who bought the volume with drops of his blood, and enjoyed the reading of it even as I did.

 - George Gissing, "The private papers of Henry Ryecroft"(1903)
== 
52년 전 대학 3학년 가을. 수업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에 없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50대 초(중?)반의 아저씨가 헌 책 3,40권을 좌판에 늘어 놓고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여기는 책이 팔릴 장소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안스러워져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좌판 앞에 쭈그려 앉았다. 책들을 주욱 훑다 "김교신전집"이 눈에 꽂혔다. 더우기 가난한 내 주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었으니....

이제는 장숙의 양재도서관에 자리한 "김교신신앙저작집"과 나의 인연기(因緣記)이다.

(2)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시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단 말인가!

天何不仁之甚!我死汝生,理之所常。汝死我生,何乖理之甚!

  - 李舜臣, 亂中日記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未堂, 푸르른 날


(1)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

事來心始現

事去心隨空

  - 洪自誠, 菜根譚

==

“Don’t think of an elephant!”

(‘코끼리야, 제발 좀 사라져다오!’)

  • ?
    이보 2026.06.04 22:56
    제 안의 코끼리떼와 밀당 중인데 상인의 말씀에 힘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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