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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번역해 놓으면 (아무래도!!) 그것은 그 작가의 작품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작가의 작품에 '관한' 무엇이긴 하겠지만 말이지요."(단보선생)

오늘 식사는 'potluck' 이었다. '이 외국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라는 난제는 '영어에 일자무식하고 미국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의 단편 소설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내가 '한국어로' 읽어낸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대개 따뜻하고 차분한 도덕적 언어로 스스로를 포장한 채, 미국 남부의 습하고 평평한 온실 속에 안주하는 자들이다. <A good man is hard to find>의 할머니는 가문의 자부심이라는 관념적 수사에 갇혀 있고, <Good country people>의 헐가(조이)는 철학 박사 학위라는 자폐적 무신론의 온실에 살아가며, <The displaced person>의 매킨타이어 부인은 효율과 자본의 언어로 질서를 유지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삶의 의미와 신앙, 혹은 세계의 질서를 완벽히 '알고' 그렇기에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앎'이란 결국 자신의 메마른 경험 덩어리들을 오려 붙여 만들어낸 자폐적 시뮬레이션이자 에고의 정교한 확장으로서 역사적 산물에 불과하다. 오코너는 이 안일한 가상성을 깨뜨리기 위해 관념의 언어를 들려주는 대신, 부적응자의 총구, 빼앗긴 의족, 혹은 트랙터의 육중한 차체라는 차갑고 거친 실재의 몽둥이를 휘두른다. 인물들이 구축해 놓은 닫힌 사유의 집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난다. 은총과 타자성은 매끈한 문장이나 슬로건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모른다'라는 미지로서, 자신의 역사성이 이끈 몸의 예측 모델을 사정없이 부숴버리는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개입으로서 도달한다.

번역된 외국 소설을 읽는 나의 문제의식도 이와 정확히 같은 궤적 위에 놓여 있다. 한글이라는 모국어의 매끈한 결 위에 앉아 외국 문학을 읽으며 편안한 감동에 젖어드는 것은, 오코너의 인물들이 자기 집 거실이나 농장에서 읊조리는 안일한 기도문이나 관념적 자부심과 다를 바 없다. 번역 텍스트가 던지는 낯선 문장을 접할 때 나의 뇌가 띄워 올리는 풍경은, 원어가 태어난 저 아득한 미국 남부의 붉은 흙먼지, 습한 열기, 혹은 귀작이 짊어지고 온 피난민의 거친 숨소리가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겹쳐온 한국적(?) 이미지 덩어리들의 자폐적 편집본일 뿐이다. 그것은 타자성과의 진짜 만남이 아니라, 타자의 이름을 빌려 내 안의 온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관념적 재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매개한 독서는 모두 번역이며 겹침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타자성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원어와 그 시공간적 이미지가 쌓아 올린 몸이라는 끌개이자 '마음의 길'(단보선생)을 사회학적 '아비투스'라 부르든, 한 시대를 관통한 '가치관'이나 '문화'라 부르든 그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원어와 시공간이 엮인 감각질 덩어리를 내 모국어의 한계선 위로 가져와 거칠게 들이받고 겹쳐 내는 '간단없는 노동'의 유무다. 타자성에 다가선다는 것은 매끈한 모국어로 엮인 '마음의 길'이 주체가 돼 '자신도 모르게' 이뤄지는 자동화된 해석에 서늘한 제동을 거는 일이다. 오코너가 단편 속 조지아주의 붉은 흙과 음운, 인종적 편견과 귀작의 외국어, 의족의 딱딱함과 황량한 불길 속에 내던져 놓은 그 역사적 이미지들을 향해 내 안일한 감각의 파형을 억지로 늘리고 맞추어 나가는 일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단어와 원문이 품은 시공간적 실재 사이의 유기적 불일치를 자각하며, "나는 저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서늘한 한계의 문턱 앞에 내 신경망을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노역이다.

결국 번역본을 읽는 독서가 자폐적 소비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글자라는 가상성 뒤로 도망치기를 멈추고 텍스트가 던지는 어긋남의 마찰을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A good man is hard to find>의 할머니가 부적응자의 총구 앞에서, 혹은 <Good country people>의 헐가(조이)가 빼앗긴 의족이라는 차가운 결핍 앞에서, <The displaced person>의 매킨타이어 부인이 귀작이라는 타자 앞에서 자신의 오만한 사유를 꺾고 실재를 만났듯이, 나 또한 원어와 그 시공간의 맥락을 향해 내 모국어의 습속을 거칠게 들이받는 간단없는 응하기의 노동을 치러내야 한다. 번역문과 원문을 교차하여 읽고, 고유 명사나 핵심어의 어원 및 당대 맥락을 추적하여 역사적 감각질을 복원하고, 낭독을 통해 외국어 고유의 음운, 호흡의 길이, 억양의 높낮이 등을 살펴 그 언어권 사람들의 신체적 습속의 궤적을 살피는 등의 일 말이다. 이러한 신체적 마찰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서늘하고 단단한 타자의 얼굴에 가까스로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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