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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0_유재

 

ANT와 아이들(2) 무시무시하고-아름다운 비인간행위자, 버섯

 

7. 칭과 바라드의 무시무시하고-아름다운 비인간행위자, 버섯


제이슨 무어가 전유(appropriation)’라고 부르는 것을 칭은 구제(salvage)’라고 부른다. 칭 또한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원료, 노동, 토착지식, 동물의 생명과 같은] 살아 있는 존재들을 끌어 들이는”(120) 자본주의의 놀라운 축적에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무어가 역사학적으로 전유정점의 붕괴를 예측한다면, 칭은 구제 자체가 실은 본래 이중적이라고 본다(칭은 이를 구제의 양면가치”(243)라고 부른다). 구제란 우선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120)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은 무언가 주변자본주의적인 것을 성공적으로 자본의 순환선(循環船)’ 속으로 구조해 낸, 혹은 성공적으로 인양(引揚)해 낸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ANT식으로 말하자면 무언가가 자본의 네트워크-행위자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은 곧 변환과 등가의 계선을 따라 다른 식으로 네트워크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만약 자본이 비자본주의적인 것에 의존한다는 것이 이토록 여실히 드러났다면, 우리는 이것을 잠재해 있는 공유지(latent commons)”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공동의 목적에 동원될 수 있는 얽힘”(243)을 자본주의적으로 번역한 데 지나지 않는다. 칭은 자본주의가 구제해낸 작업을 다르게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자본 자체가 이미 자신의 축적 토대로 활용하는 소외가 자본주의적 자산이 형성될 수 있는, 얽힘이 풀린(disentanglement) 형태라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고 본다. 비즈니스는 실은 끊임없이 교란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기만 하면 된다.

 

공유지에 있는 것으로부터 자본이 아닌 다른 네트워크를 번역하기 위해서 칭이 선택한 비인간행위자가 바로 버섯이다. 놀라운 인기를 구가한 칭의 책―『세계 끝의 버섯』―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선언(manifesto)이 될 것이다: 버섯을 중심으로 구제리듬을 다시 측정하자. 칭이 네트워크의 중심점으로 선택한 버섯은, 오리건주 케스케이드산맥에서 다양한 인종 그룹에 의해 채집되어 국제무역으로 대륙을 횡단하여 일본으로 수출되는 송이버섯이다. (이것이 바로 의무통과점(미셸 칼롱)이다. 버섯은 어떤 사람들의 생계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재미(在美)일본인, 미엔(동남아시아), 라오스와 캄보디아 난민들, “산에서 위안을 얻는 백인 남성(베트남전쟁 참전용사, 해직된 벌목꾼, 자유주의적인 도시사회를 거부하는 시골의 '전통주의자' )”(131)들이 버섯을 캔다. 이들은 모두 어떤 식의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들은 자유주의자들이 '표준 고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147)하기도 하고 버섯이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버섯은 이들에게 채집활동의 트로피가 되어주기도 하고 경매품, 혹은 예술품이 되기도 한다(송이버섯의 가치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섬세하고 고도로 전문적인 감정(鑑定)을 요하는데, 이때 감정하는 중계인/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 사이에서 버섯은 예술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 사실상 버섯은 거의 상품이 될 수 없고, 상품이 되는 것은 단 한 번뿐이다. “오직 나중에 행해지는 분류작업만이 버섯을 얽힘에서 풀어버리고 자본주의 상품으로 만든다”(225). 일본에 도착한 버섯은 다시 선물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중매인이 각각의 버섯을 그들에게 알맞은 사람들에게 팔게 되는 조율작업에 의거해서 일어난다. 버섯의 공급사슬은 이미 매우 혼종적이다.

 

그런데 애초에 버섯이 어떻게 캐스케이드 산맥에 나기 시작했고, 어떻게 일본으로 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40-50년간 지속된 근대적 삼림 관리 기술(산불억제)과 동남아산 목재와의 가격 경쟁에서 패배한 후 사라진 벌목산업에 의해 마련된 조건이었던 동시에,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고 엔화 가치를 상승하게 해서 일본인의 소비력을 높인 플라자합의(Plaza Accord, 1985)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버섯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근대적인 숲에의 통치(government)와 산업의 국제적 제조건으로 인한 폐허(廢墟)’가 요청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폐허는 버섯이 참여하고 있는 네트워크.

 

실로, 어떤 미생물학자들은 가장 무시무시한 생물체는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을 먹고 사는 버섯이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한 최후의 생존태다. 버섯은 모든 죽음들이 재생되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모든 폐허에서 생동하는 물질’(제인 베넷)의 형태다. 삶은 죽음이 아니고, 죽음은 삶이 아니다. 버섯이 그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폐허원년(廢墟元年)은 버섯에 의해 풍경화(landscaped)된다. 캐런 바라드(Karen Barad)194586815,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바로 그 시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방사능은 동기화되었다(synchronized)고 말한다(G106). 바로 그 동기화에 의해 모두가 미시-거시적으로 얽혔다(entangled). 버섯이 상공에 떠오른 순간은 바로 지구와 대기가 돌이킬 수 없이 얽혔음을 뜻하는 기묘한 물질-지형학적 순간이다. 땅 속에서 모든 버섯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버섯의 생태지형학이라면, 폭탄에 의해 드러난 버섯구름은 이제 모든 방사능물질이 행성차원에서 연결되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은 단순한 형태적 상동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라드는 실제로 분석 결과, 수집된 먼지와 열대 우림에 서식하는 균류에서 방출되는 칼륨, 그리고 구름 형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G114-15)고 보고한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 실험실(LBNL)에서는 윌슨 구름 상자에서 소형 구름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버섯이 먹이로 삼는 류의) 이온화 방사선을 감지한 바 있다(G115-16). 방사능은 시간을 공간처럼 만들었다. 물질 속에서 말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이래로 모든 신체들은 바라드의 용어에 의하면 새로운 공간-시간-물질-풍경(spacetimemattering-scape)”을 살아간다. 바라드는 (과학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양자물리학과 중력장 간의, 혹은 거시-미시 간의 통합을, 내가 보기에는, 정치철학적으로 얼버무리면서) 양자얽힘은 곧 행위적 실재론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양자 얽힘은 단순한 고안물이나 고도로 기술적인 실험실 작업의 결과물이 아니라, 관계적 행위자적 존재론의 핵심이다. 얽힘은 내부적으로 작용하는 행위자들의 존재론적 불가분성인 것이다. 자연-문화적 현상들은 얽힘들이며, 반복적인 내부-활동의 동역학의 침전된 효과다. (quantum entanglements are not mere contrivances, nor simply the outcome of highly technical laboratory practices, but rather the core of this relational agential ontology. Entanglements are the ontological inseparability of intra-acting agencies. Naturalcultural phenomena are entanglements, the sedimented effects of a dynamics of iterative intra-activity.) (G110)

 

모든 것은 양자차원에서 이미 얽혀 있다. 그것을 추적하고 알아채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인간 행위자를 통해 회절(diffraction)되는 풍경/네트워크로 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버섯을 찾는 사람들처럼, ‘어떤 생계에의 요구다르게 보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다른 생활의 자리에 와 있다. 김은주는 다중위기 시대비인간 전회”(12)를 요청한다고 본다. 지구온난화(생태위기), 팬데믹(보건위기), 불안과 증오, 사회적 우울이 우리 삶의 자리이고, 이 자리는 곧 폐허에서의 삶을 조우해야 하는 행위자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곳이다. 폐허에 와 있다면 그곳의 최상의 행위자인 버섯과 함께 보기가 요구되지 않을까.

 

Work Cited

 

김은주, 다중위기 시대, 비인간 전회와 회절의 정치. 여성학연구, 34:1. 2024. 7-34.

, 애나 로웬하웁트.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노고운 옮김. 서울: 현실문화연구, 2023.

Barad, Karen. "No Small Matter: Mushroom Clouds, Ecologies of Nothingness, and Strange Topologies of Spacetimemattering." Arts of Living on a Damaged Planet: Ghosts and Monsters of the Anthropocene. Ed by Anna Tsing, Heather Swanson, Elaine Gan, and Nils Bubandt.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7. 1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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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 2025.06.20 19:58
    *출력은 제가 일괄적으로 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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