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의 공부는 ‘근본 실용주의’로 정향 되어 있습니다. ‘생활’이라는 임상을 분명히 하며, 이 생활을 돕고 밝히는 이론과 개념과 어휘를 채택하고 실험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나 자신에게 요청합니다. '사린(四隣)의 동무되기'의 주체, '낮은 중심'의 주체, '생활 양식'의 주체가 되고자 애쓰며, 그렇게 우회하여 자신을 (부분) 구제합니다.
허무에 삶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현실로부터 '원망'으로 도피하지 않습니다. 정직한 절망과 작은 실천의 가치를 믿으며, 정신적 존재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는 몸짓과 움직임과 운동으로 존재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방식이 여럿 있겠지만, 차마 <공부>라는 존재 형식이어야 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장숙에는 <공부>라는 활동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그 층위와 넓이와 깊이를 개척하고 계시는 선생님 그리고
이 활동에 동참하는 학인들이 존재합니다. 좁은 길입니다. 홀로 있지 마시고 이곳으로 오십시오.
다름 아닌 자신을 위하여, 오직 '돕기'로 존재하시는 선생님과 등불과도 같은 동학을 얻는 일에
욕심을, 용기를, 내십시오. _ 숙인 는길 (아산시 권곡동)
미래의 숙인들에게,
"자아의 지옥, 인식의 감옥, 변증법의 고리에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 (레비나스, 블랑쇼)
혹은 개념적 사유의 내재화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아도르노)
내 몸은 어떻게 내 문제에 앞설 수 있는가? (파스칼, 부르디외)
목숨을 건 도약의 삶과 그 관계를 어떻게 일상화 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 고진)
성숙의 대가는 무엇인가? 내 거울방, 그 상상적 동일시의 중력에서 벗어날 때 얻는 상흔은 어떻게 남아 있는가? (프로이트, 라캉)
사랑하면서 어리석지 않을 수 있는가? (베이컨, 바르트)
사랑하지 않고 아낄 수 있고, 진리를 모른 체하며 극진할 수 있는가? 새로운 성/사랑의 문화를 정치적으로 재배치하려는 노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마찬가지로 노동-체계의 금기와 사랑-축제의 위반을 조화시키는 삶의 양식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라이히, 바타유, 마르쿠제)
연인도 친구도 타인도 아닌 동무의 길,
길 없는 그 길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유지되는가? " (<동무론>), 선생님)
인간에게만 고유한 존재양식과 방식을 탐색하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밝아져서
자기구제에 이르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_숙인 단빈 (경기도 구리시)
환영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살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그 운명의 심부름을 하십시오.
마침내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알 때까지.
이 말의 실용적인 지침은 아래와 같습니다:
적어도 1년간은, 저항없이, 수모를 반기며, 의심을 연기하고,
자신을 끄-을-고, 최고의 노력을 해보십시오! _ 숙인 유재 (서울시 목동)
6월 16일부터 20일까지 하반기 입학 신청 기간입니다.
자기 구제의 공부길을 함께 걷기 원하는 분은 문의해 주세요.
010-9427-2625(는길) 010-7150-5441(단빈) 010-8454-6563(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