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풀어놓은 양들이 나의 여름 속에서 풀을 뜯는 동안은
삶을 잠시 용서할 수 있어 좋았다
기대어 앉은 눈빛이 지평선 끝까지 말을 달리고
그 눈길을 거슬러오는 오렌지빛으로 물들던 자리에서는
잠시 인생을 아껴도 괜찮았다 그대랑 있으면
그러나 지금은 올 것이 온 시간
꼬리가 긴 휘파람만을 방목해야 하는 계절
주인 잃은 고백들을 들개처럼 뒤로하고
다시 푸르고 억센 풀을 어떻게 마음밭에 길러야 한다
우리는 벌써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을 지나며
두발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네 발 달린 마음으로 갔었지
살기 위해 낯선 곳으로
양들이 풀을 다 뜯으면 유목민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는다
지금은 올 것이 오는 시간
양의 털이 자라고 뿔이 단단해지는 계절
- 이현호 <양들의 침묵>
모든 지점은 중계점이며 중계점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들뢰즈의 말(속속 복습 문항)이 생각나는 詩!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