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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7 10:32

(21) 공부론, 샘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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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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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인이불발(引而不發)

당기되 쏘지 않는다

 


인이불발(引而不發), 활을 당기는 것과 그것을 쏘는 일 사이에 공부길의 묘맥(苗脈)과 밑절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당기고 누구나 쏘지만, 당김과 쏨을 한몸에, 한손에 쥐고 버티며, 그 이치를 말해 줄 수 있는 이는 희귀합니다.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 일은, 마치 알면서 모른 체하기'처럼 그저 알기도 아니며 그냥 모르기도 아닌 것입니다.

 

자본의 힘과 기술의 마력 사이에서 몰풍스레 실그러져 버린 인문학 공부의 이치(人紋)는 어디에 있을까요? 쏘기 전에는 영영 알 수 없는 것이며 쏜 후에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 공부의 이치라면, 정녕 행할 수 없기에 성급히 알아 버리는 일, 그리고 외려 모르기에 행할 수 있는 일! 이 두동진 갈래길에서 행하면서 알아가는 수행성(修行性)의 지혜는 어떻게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요?

 

'호의와 싸우는 유례없는 연대의 길'(동무)을 말했듯이, 다시 '알면서 모른 체하기’(공부)라는 오해 많은 권면(勸勉)을 합니다. 그것은 당기되 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며, 아는 것을 버텨 내며 그 온축(蘊蓄)의 숙성을 기다리는 것이고, 명중이라는 획지이추(畵地而趨)를 굳이 힘겹게 에둘러 시중(時中)을 찾아가는 것이며, 일상(日常) 과 비상(飛上), 체계와 개인을 동시에 지양하며 그 위태로운 사잇길을 걷고 또 걷는 것입니다.

 

'이백은 술 한 말에 시를 백 편 지었다(李白一斗詩百篇)고 하지만 실상 그 시들은 지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웠을 텝니다. 생각은 아직 시가 아니고 시는 이미 생각과 다르지만, 이 의도와 실천 사이의 위태로운 길에 서서 아직 아무도 품어 보지 못한 그 사이 이치에 천착하는 일은 오직 인문(人紋)의 공부만이 열어 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전래의 가치입니다.

익으면 진리가 도망치듯, 도망치는 진리를 도망치는 대로 놓아두는 것! 그처럼 기다리되 기대하지 않고, 알되 묵히며, 하아얀 의욕으로 생생하지만 욕심은 없으니, 당기되 쏘지 않는 것입니다.

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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