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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빈
詩는 마음의 우수리로, 사물에 완전히 접촉하고 있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단보 선생께서는 말이 생성되려면 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하며, 말이 되지 않을 때는 거리감의 문제로 접근해 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초보 운전자 시절에는 운전에만 과몰입한 채 운전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운전이 아닌 다른 것에 의식을 돌리고 있는 저를 보고서야 비로소 운전이 편해졌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반복된 행위 속에 여유가 생긴 것인지, 운전이 편해졌기에 의식을 다른데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운전하는 행위와 그것을 의식하는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생겨났음은 분명합니다.

에고를 비켜나서 만나게 되는 그 작은 빈터에서 예기치 못한 것들이 생성되는 것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상에서 강하게 밀착되어 자타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을 빈번하게 겪습니다.
새로운 것이 생성될 수 있도록 빈터를 확보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과제로 남습니다.

2. 연이정
선생님께서는 숙인들은 서로 비평하는 일을 꺼려 하고 실(實)보다는 화(和)에 기울어 있다고 비평하시며, 장숙에는 없는 '비평'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좋은 비평은 기분의 여울을 넘어 정신의 대양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고도 하셨다. 좋은 비평이란 어떤 비평일까?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비평의 형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듣는 사람의 정서를 잘 보살피는 조심함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동학에 대한 관심과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하며, 자기 성찰이 우선 되어야 비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서늘한 학인의 비평이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현명한 숙인의 자리를 얻어내기를 바란다는 선생님의 권면의 말씀이 '비평'에 대한 나의 이해를 도왔다.

3. 김ㅅ연
지난번 수업때 단보선생께서는 그간 5분에서 10분가량 꾸준히 지속해온 스페인공부의 절대량을 30분으로 늘렸다는 공부의 근황을 소개하셨습니다.
저는 그간 달리기를 40분 4킬로 정도를 꾸준히 하면서 스스로 만족했었는데 앞으로는 속도를 높여서 60분간 7키로로 절대양을 늘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던 몸공부의 절대량을 대폭 늘리고 몸과 마음에 생기는 변화를 잘 관찰해보겠습니다.

4. 조ㅇ남
삶 전체를 응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바틀비는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는 완벽하지만, 일체 먼저 말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정직하다. 잘 돌보는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마음 자체가 안 보이도록 갈고 닦아 마음의 방향을 잡아가라. 먼저 말하려 하지 말고, 오면 항상 대나무, 나무, 흙처럼 솜씨를 발휘해 봐라.

5. 유ㅅ진
교재공부 시간에 조원들과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토의 결과를 간단히 정리해본다. 우선 윤리적 소비의 출발점은 애초에 소비를 줄이는 데 있다. 중고 거래나 공유를 활용하여 덜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불가피한 소비를 해야 할 경우에는 가격이 아닌 가치를 파는 좋은 기업의 상품을 선택하자. 다만 이런 선택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소비이기도 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소비는 결국 환경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환경단체 가입 및 후원, 부당한 행위에 대한 고발과 청원 활동 등에 적극 참여하며 ‘행동하는 소비자’가 되자.

6. 숙비랑
“외부가 나에게 어떤식의 기별을 해 올 때 어떻게 응하는가 하는 것이 삶의 질의 전부”(단보선생님)라는 말은, ‘말에 응하기’를 넘어 삶의 양식 전반이 ‘응하기화(化)’되는 경우임을 배웠다. 진리의 얼굴과 마주하고서도 사람과 어울리며 중을 치는 지혜가 있는 것처럼, “자기의 무게 중심 가운데 살다(단보선생님)” 이웃의 상처를 접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 삶인 것이다. 이는 화이불류(和而不流)의 삶을 연상시키며, 홍진(紅塵) 속에서 먼지가 옷깃에 내려 앉기 전에 그곳을 이미 통과한 실력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경우로 보인다. 잠시만 긴장을 늦추면 금시 휩쓸려 자/타를 잃고 너무 경직되면 응하지 못하거나 부러져 물화/상처(어리석음)의 자리로 들어선다. 타자 속의 자기와 자기 속의 타자가 상호 간섭하며 작용하되 결코 ‘하나’는 아니(不二)라는 사실. 이 ‘사무친’ 깨달음이 있은 후에야 사람은 비로소 응하기의 삶이 가능해 질 것인가. 자아는 항상 틀의 공부(範,模,型)를 넘어서려하고 공부는 언제나 아득하기만 하니, 갈 길이 참, 멀다.

7. 는길
언제인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유재와 단빈과 대화가 이어졌던 적이 있다. 말을 터보니 각기 홀로 선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었고, 무력감과 슬픔도 따랐는데, 막혀 있는 형식이 유사했다. 순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생기면서 이런 생각이 돋아났다. 만일, 내가 선 자리에서 나 자신의 문제를 푼다면, 나의 동학들도 그들의 문제를 풀 게 될 것이다. 그가 되면 나도 될 것이다, 내가 되면 그도 될 것이다, 라는 공통 운명에의 감각. 개입의 범위를 다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여전히 어떤 연결성을 수긍하며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얼마나 속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얕은 에고로, 겉치레로써 공부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속속에서도 어김없이 선생님의 순일한 생활양식은 명경(明鏡)이 되어 나를 비춘다. 이 대면을 피하지 않기로 하자.
결국에는 나도 내 삶과 죽음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8. 소ㅇ광
인류세라는 파국은 새롭지 않다. 인간이 으레 파국적이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계란 인간의 개입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자동성(automatism)의 구조를 지닌다. 그러므로 사물과의 사귐이자 만남의 기예인 기술은 기계의 폐쇄적인 자동성이 고장날 때 시작된다. 즉 어딘가 부서지거나 금이 가고 불완전해야 도리어 자꾸 손이 가며 이윽고 기물 편에서도 손탄다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K 선생은 수리공의 주체를 암시했다. 수리공의 주체란 “평소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주체였다가 누가 문제가 생기거나 말을 걸면 즉시 기동해서 관심을 쓰고 응해서 고쳐주는 사람”(K)을 의미한다. K 선생은 수리공이야말로 성인이 아닌지 물었다. 버리고 새로 사는 소비주의 문화는 죽었다가 부활하거나 종말했다가 새 창조한다는 성서적 낙관주의와 조응한다. 두 문화는 모두 경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플레이하던 케릭터를 일부러 죽이고 다시 시작하는 게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닮았다. 어쩌면 성인과 수리공은 둘 다 부활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기 삶을 포함해서 이미 주어져 있는 모든 것을 그것이 마지막인 양 돌보고 누리고 청소하고 수리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의 주인공인 청소노동자는 오래되고 낡은 것의 아름다움(‘사비’)을 길게 누린다. 늘어지는 카세트 테이프를 매일 밤마다 직접 되감아 놓는 그의 퍼펙트한 규칙이, 도리어 진짜 늘어지는 하루를 그 시작부터 아름답게 구제한다. 그의 규칙이 반복될 수 있을 만큼의 규모를 지닌 허름한 집은 항상 깨끗했고 그만큼 넓었다. 그의 청소 노동은 그의 집을, 그의 삶을, 그의 모든 사물들을 아름답게 수리하는 기예였던 것 같다.

9. 권ㄷ환
응해서 사는 삶에 대해 반복적으로 배우고 있다. 응하는 삶에 대해 배우는 동안 나는 한 동학을 자주 떠올렸다. 말수가 적은 아무공이 나는 장숙에서의 수많은 대화에서 정중동(靜中動)을 실천하고 있다고, 누구보다 조용하지만 참 바쁘다고 여러 차례 생각하곤 했다. 그의 말은 많은 경우 언어유희를 통한 개그로 나타나는데, 그는 매번 많은 여성의 야유가 예상되는 '아재 개그'라는 불리한 지형에서의 싸움(?)을 자처한다. 그 험난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높은 개그 성공률을 자랑하는데, 그의 머릿속엔 입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잊힌 개그의 청사진이 많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유재는 아무공을 처음 본 날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자신만의 중심을 갖고 있는 듯했는데, 그는 꼭 필경사 바틀비같았다"라고 감상을 말했던 적이 있다고, 아무공이 이번 자기소개에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역시'라고 조용히 읊조리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 자리에서 만나는 우리는 모두 "오래 만나면 닮게 마련일 테지만 개인별로 닮는 방식은 다 다를 것"이다. 서시빈목(西施顰目)의 경우처럼 무작정 따라 한다거나 혹은 멍청하게 따라 하다 이상한 거나 닮는 것도 문제지만, 오래 만나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도 작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항의 늪에서 허우적대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탐욕에서 비롯된 모방 욕망으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중심을 낮추고 마음의 변덕이 좇아오지 못할 만큼 단단한 생활 가운데서 그 중심으로 응하는" 모방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꼭 다른 형식의 기도와도 같은데, "기도는 곧 더 큰 정신의 자람을 신뢰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응하는 삶과 기도하는 삶의 양식은, 함께하는 타자의 더 큰 정신과 조응하며 (탐욕적이거나 멍청한 닮음이 아닌 그리고 저항도 아닌)하이얀 닮음이 실현되는 토대가 되지 않을까. 응하는 데에도 모방하는 데에도 역시, 낮추고, 낮추고, 낮추는, (적은)생활, (응하는)생활 그리고 (조심하는)생활이다.

10. 박ㅇ름
속속 모임의 한 꼭지인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조카들과 지내며 일종의 꾀를 부려 난감한 상황을 해결했던 일화 두 가지를 소개했다. 그중 하나는 아침밥으로 마시멜로를 먹겠다는 초등학생 조카와의 일화였는데, 화학약품을 운운하며 마시멜로가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설명하는 것으론 조카의 마음을 돌리기에 실패했지만 이후 꾀를 떠올려 웃긴 표정과 말투로 공주 대접을 하면서 공주 배 속에 아침부터 안 좋은 음식을 넣어서 되겠느냐며 밥을 권하니 배시시 웃으며 마시멜로 대신에 밥을 먹겠다고 한 것이었다. 단보선생은 나의 자기소개에 응하여 '거리감'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다. 어떤 식의 거리감이 있을 때에만 말도 생기고 꾀도 생기는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현실에 코를 박고 있으면 꾀가 생길 여유가 없다며 말과 시도 비슷한 양상이겠다는 생각을 말씀하셨다. 이날 배운 거리감을 생각하며 나의 일화를 돌아보니 조카에게 화학약품을 운운하던 나의 모습은 거리감에 대한 감각이 없는, 그 순간의 상황을 어떻게 잘 풀어갈 것인가의 생각이 들어오기 전에 즉각적인 반응이 먼저 나와버린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거리감을 가지고 상황에 잘 응하려면 그 상황에 빠져있기보다는 그 상황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낮은 중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 임ㅁ애
'궁(窮)'의 자리가 출발이라는 말씀을 늘 확인하며 산다. 궁해야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데까지 간다는 말은 나에게 이론을 넘어 매번 다시 체감되는 사실이었다. 궁하지 않으면 변할 까닭은 없다. 한때는 하늘이 무너질 지점을 대비하고 회피하는 기술에 능하고자 열심을 부리며 살기도 했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안일한 외로움 때문이 아니듯이, 인간이 홀로 이룰 수 있는 성취에 대한 처절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간사의 한계를 절절이 체감하며 들어섰던 공부길에서 나는 진제의 끄트머리를 잡고 비용을 기꺼이 치러가며 정신이 자란다는 또 다른 체감을 만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솟아날 구멍이 생기지 않는다는, 나름의 자득으로 한동안 걸을 힘을 얻어가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 절망의 어느 바닥에 다다를 때마다, 냉소로 응대하지 않고 시련을 지지대 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체감들을 통과하며 겹눈의 희망을 언뜻언뜻 본 듯도 하면서, 생활의 견결함을 통해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노동의 효력도 알아가고 있다. 덕분에 절망의 늪에 빠지는 횟수가 줄고, 빠지더라도 재빠르게 빠져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은 내가 통과한 그것이 이미 또 다른 차원의 궁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가는 중이다. 어느 정도 평평한 길을 걸으며 리듬을 탈라치면, 여지없이 새로운 층위의 궁지를 만나기 때문이다. 절망의 공세가 이렇듯 진화하는데, 다른 차원의 절벽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름의 희망을 발견하고 체감할수록, 오히려 새로운 절망을 내게 선사하는 인연들도 늘어난다는, 어떤 끝없는 길을 향해 있다는 허무가 밀려오곤 했다.
아무리 깊은 바닥에 떨어졌을지라도 다시 올라올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알고 있지만, 떨어지는 순간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꺼이 시련을 맞이하겠다던 명랑한 결기가 슬그머니 허무로 미끄러지는 절망의 늪. 고통이 줄어들기는 할까.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줄어들기는 하는데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몸의 문제에 혐의를 두고 해결하는 중이지만,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여전하다. 아직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름의 방편들을 동원하여 급한 국면들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와중에 "사람은 '기대'하기 마련"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꽂힌다. 희미하지만 새로운 실마리를 일단은 발견한 듯하다. 진화하는 절망에 대해 다른 차원의 설명을 찾기를 의욕해 본다.

12. 상인
① "거리가 있어야 말도 꾀도 생기니 말과 꾀를 생성시키는 거리감이 중요하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일수록 호의의 늪에 빠지지말고 알맞은 거리감을 가져야겠다. 숙인들과도 당연히.
② "맡겨서 하는 공부, 절대량이 요구되는 공부"라는 귀절이 가슴에 박혔다. 언제부턴가 공부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먹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십자가를 내가 지고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는 예수를 생각하며 눈물만 짓는 것 같아서 였다. 나의 십자가를 내가 지지않으면 어찌 나를 구제할 수 있겠는가?

13. 지린
지난 속속의 조별토의 시간에 내가 속한 조에서는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생활양식으로써
사물과의 관계맺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사물과의 적절한 관계 맺기와 애착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있었고,
이를 시원하게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사비(さび)를 설명해주시고,
실용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수리하는, 수리공적인,
소박한 삶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을 때 이를 해소할 수 있었다.
애착으로는 미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비는 낡은 것 속에 숨어 있는 차분한 아름다움이나 멋을 뜻하기 때문에 새것에서는 안 생기니 美라고 설명해주시며,
생활의 미학을 위해서 매사 응해서 말하는 수리하는 삶을 언급해주신 것인데,
성인들의 삶은 수리공적인 삶이라고 덧붙여주셨다.

14. 독하
'수리공적 삶'(단보 선생)

문화를 '정신의 외화'라고 말하듯, 사물과 관계 맺기에서도 정신의 외화가 이뤄지는데 이는 '장소화'와 연결된다. 사물과의 응하기에서도 양자 단위의 '상호 습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물을 다룰 때, 몸과 사물 사이에는 간단없는 물리적 마찰과 압력, 열에너지 교환이 이뤄진다. 이로 인해 몸과 사물은 미세하게 재배치될 수밖에 없다. 일례를 들어, 가위를 오래 다루면 압력이 가해지는 부위는 굳은살이 박여 가위의 손잡이를 고통 없이 다룰 수 있게 변형되고, 가위 역시 마찰로 마모되며 체액이 스민 부위는 특유한 광택을 낸다. 나아가 신경계의 패턴 변화도 이루어진다. 뇌과학적으로 오래 사용한 도구는 고유감각(뇌의 체성감각지도)이 확장되어 도구가 신체의 일부로 편입되고, 몸의 특정 상태와 묶여 하나의 패턴으로서 축중된다. 사물을 짧은 주기로 소비하고 대체하게 되면 이런 과정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반복된 패턴의 유입은 신경계에 영구적 홈을 낸다. 몸의 특정 상태와 축중된 사물의 고유 패턴은 몸의 특정 상태를 부르는 실마리 패턴으로서 작동한다. 유행에 따라 짧은 소비를 반복하는 소비 사회에서는 사물의 패턴이 몸과 정신에 각인되지 않아 '장소-감'(장소에서 연원하는 몸의 특정 상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무시간-무장소'적으로 사물을 소비하는 현대인의 허무는 이에서 비롯한다. '수리공적 삶'은 사물과 관계 맺기를 소비에서 변침하여 장소화로 나아간다.

15. 아무공
주로 말하기와 연관해서만 응하기가 이루어지지만, 실상은 24시간 전부가 응하기인데 내가 먼저 응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가 나에게 어떤 식의 기별을 해 올 때 내가 어떻게 응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에 성인들도 먼저 말씀 안 하시고 민중이 고민을 얘기해오면 거기에 응해서 답을 했다. 우리도 먼저 나서거나 먼저 설명하지 말고 가만히 자기의 무게 중심 가운데 살다가 기별이 오면 대나무 같이 흙같이 자기 솜씨를 내보이는 그런 응하기로 생활의 방향을 조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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