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께서 강연장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장숙의 숙장는길과 숙유단빈 그리고 수*씨가 강연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숙의 팽주여일이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언시상인과 꽃담당해완과 미*씨가 강연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거인이 될 뻔한 거벽(巨擘)들!
육당과 춘원, 그리고 좌옹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이 강의는,
"복거일 식으로 사회적 악한을 변호하는 글 즉 사회적 악한의 변증으로써,
그리고 벤야민 식으로 글쓰기를 통한 과거구제라는 관점으로
즉 다르게 재구성하면 끝나버린 과거를 구제하게 된다는 관점으로,
마지막으로, 인문학이 가장 힘들게 해야 하는 것은 인물평인데,
사람을 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진검승부인 것이므로
죽은 사람을 다르게 말하고 싶었다.",고 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알기와 되기 돕기의 공부틀로서 이 세사람의 거벽됨을 강의해주셨습니다.
무리해서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이 세 사람은 자기 존재가 앎을 넘어가지 못한 경우,
즉 되기의 실패라고 하셨습니다.

육당과 춘원 좌옹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재회상하는 강연이었으므로,
공부란 무엇인가하는 문장이 속속 많았습니다.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공부는 말이나 글을 정확히 하는 것이다.
공부가 기본적으로 알기 문제로 끝나면 "정신이 큰다"는 목적에 부합할 수 없다.
공부의 주체는 에고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나이거나, 무의식이거나, 제3의 주체이다.
에고를 없애지는 못한다.
공부하는 것은 생활을 문제삼는 것이다.
공부는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것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별게 아니고 자기생활 속에서 반복하는 무엇인가를 정해야 한다.
무엇을 반복하되 자기 생활속에 그것을 접착시켜야 한다.
내가 말하는 공부는 자기 성취를 모두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할 때 내셔널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논리는 전쟁논리이다.
하이에나처럼 공부하는 거다. 하이에나는 날래지는 않지만 끝까지 오래 달릴 수 있다.
끝내 피식자의 생식기를 물어 뜯어서 마침내 잡는데,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뛰어서 핵심을 물어 뜯듯이 잡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