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봄날이 가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오직 그 무상제행(無常諸行)의 이치에 나날이 시달리고 몸으로 버성기면서야 사람은 사람이고, 그 이치를 납득하고 아프게 수긍하면서야 그 존재는 낮게 익어갑니다. 나날이 줄어가는 그 봄날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도 사람의 일이지만, 어렵사리 찾아오는 봄날을 쉬 꺼버리는 것도 사람의 짓입니다.
인생은 오직 인생이 짧다는 것이고, 인생이 짧다는 것은 오직 짧아진 다음에야 깨단할 수 있어, 과연 '봄날은 간다'는 것만큼 실한 화두는 없을 것입니다. 비용이 없는 진실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봄날이 가는 일을 빼고는 슬픔도 외로움도 지혜도 성숙도 체감할 수가 없지요.
이 책은 내 한 사람이 세속을 혹은 빠듯하게 혹은 느긋하게 지나면서 그 봄날이 가는 일을 비망록처럼 적어놓은 것입니다.
봄날을 빼앗기는 공제(控除) 속에서 존재가 익어가는 소리를 그때그때 적바림한 것이지요. 익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 그러나 익어도 죽는다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라는 짧은 봄날의 이치인데, 그러나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든 슬기롭고 엽렵해서 차라리 그 짧은 봄날의 이치 속에서 깊은 존재의 의욕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작은 책으로 그 하아얀 의욕의 반려로 삼는다면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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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한신대 교수. 단행본 25권의 저자.
'글항아리'에서 낸 책으로는 『영화인문학』(2009)과 『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2011)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장미와 주판〉, 〈인문연대 금시정〉, 〈문우인〉 등 인문학술 공동체 운동에 지속적으로 간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