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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회약수 顯晦若水’ (k 선생님)

“경계하고 경계하시라.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 成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 (증자, 그림자 없이 빛을 보다 재인용)

“어느 고택의 사당 툇마루에 앉으니 산기슭의 이내嵐가 물레처럼 돌아간다. 얼마나 큰 물레를 볼 수 있어야 이 인연의 둘레를 깨단할 수 있을까. 아뿔싸, 이 불이不二의 환環 속으로 내남없이 깊이 개입해 있다.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 (k 선생님, 같은 책)

암은 무엇일까? 선악을 떠나, 불이(不二)적 정신이라는 입장에서 암의 역할을 살피면 암은 정신을 자라게 하는 몸의 복잡성을 포기하고 가르는 일이 된다. 정신이 자라나는 방향성이 통합에 있다면 통합을 위해 요구되는 일은 조화와 균형이다. 암은 이 방향성을 벗어나 물질의 배치에 개입하여 성장을 멈추고 파괴하는 특이점이다. 물론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범위를 좁히면 암의 주범은 부분 쾌락의 욕동에 휘둘리는 에고가 된다. 지구라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인 인간이 암을 품게 된 것은 불이적 정신의 입장에서 보면 필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암은 개체가 지닌 에고‘만’의 문제가 아닌 개체가 만나 온 외부 조건(에고들의 외화)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정신적 존재는 매체학적 입장을 오롯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합된 정신의 입장에서 살피면 암은 ‘문화(文化)의 문화(文禍)’(k 선생님), ‘역설(力說)의 역설(逆說)’(k 선생님)을 대처하기 위한 정신의 개입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암 세포를 달리 이르면 다세포에서 단세포로의 회귀다. 단세포로 회귀한 암 세포는 분열이 제한된 정상 세포와 다르게 세포 주기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반복하며 무제한적으로 분열하며 사멸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주위 세포와 소통 가능성을 잃고 외따로 떨어져 나와 무한증식하는 것이 바로 단세포인 암세포다. 세포에 깃든 정신이 ‘거대한 퇴행’(k 선생님)/축중이라는 통합성을 포기하고 퇴화로서 독립을 선언한 것인데 이 ‘강제된 독립’의 뒷배를 짐작해보려는 것이 이 글의 취의다. 정상 세포를 암세포로 변이시키는 물질을 발암물질이라 부른다. 이 발암물질의 수는 암 종류에 따라 부지기수다. 초기의 혼란으로 그득한 지구 상태를 지나 안정된 생태계를 이룬 작금의 지구에서는 대개 인간의 문화에서 비롯한 물질로 수렴된다. 발암물질이 상시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다세포로서 생존이 불리해 단세포로 회귀할 것은 당연지사다. 생명은 ‘역사화된 축중’으로서 외부 조건에 응해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메틸화돼 발현되기 때문이다. 

울리히 백이 위험사회를 말했지만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다세포의 통할된 조직 구성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종양억제 유전자, 암 유전자 등속을 변이시킬 요소들이 곳곳에 상존한다. 먹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생활 환경의 기반이 되는 건물도 안전하지 못하다. 나아가, 암을 치료한다는 방사선 치료가 발암물질의 하나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물며 공기를 잠식한 초미세먼지, 바다와 육지를 장악한 미세플라스틱, 기후 변화가 부른 자외선 노출의 증가도 암을 유발한다. 더이상 안전한 곳은 없는 셈이다. 위험 요소의 증가는 몸피를 불려 온 생명에게는 생존에 불리한 취약점이 돼 몸피를 단세포로 축소시키는 정신적 퇴화로서 암을 부른다. 이런 문화적 유산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의로움에 눈을 감은 결과다. 안중근처럼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을 주지(見利思義 見危授命)’는 못하더라도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결국 부메랑이 돼 되돌아온다는 것을 아는 것은 별다른 지혜를 요구하지 않는다. 

암은 인류의 이기적 역사가 낳은 부메랑이다. ‘이기’라는 말 속에 통합을 가르는 요소가 내포된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이동하는 매개가 시아노박테리아가 품은 ‘산소’였다면 다세포에서 단세포로 회귀하는 매개가 바로 인간이 품은 ‘에고’가 된다. 에고가 만든 정신적 산물의 누층 속에 도사린 위험이 발암물질로서 정신의 통합성을 가르고 단세포의 정신으로 퇴화하는 주범이 된다.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는 셈이다.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덕도 문화라는 정신의 유산에 있지만 이 글을 쓰게 만든 암의 연원도 문화에 있다. 그 차이는 에고의 기울기에 있을 뿐이다. 문명의 폭발은 빛이 생명의 근원으로서 지구라는 터에 품은 석탄(유)이라는 생명 에너지에 있다. 정신이 개입한 생명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이룩한 인간의 문명은 조화와 균형을 잃(잊)고 문화(文化)의 문화(文禍), 역설(力說)의 역설(逆說)에 처했다. 이로써, 암은 빚진 자의 무지로서 ‘정신의 퇴화를 알리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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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孰定而匪 2025.09.24 11:44
    彼ー語我ー語秋深みかも
    (虛子)

    그가 한마디
    내가 한마디
    가을은 깊어 가고

    *
    번역은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의 엮자 번역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역자에 따르면 이 하이쿠는 “시키의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이 두개’에” 교시가 화답한 하이쿠라고 합니다.
    독하의 글을 마주하고 생기는 즐거움에, 화답할 말을 찾고 찾다
    “말이 많지 않은 조용한 대화 속에서 가을이 깊어 가고, 서로의 이해도 깊어진다”라고 이 시를 감상한 역자의 말에 끌려
    이 하이쿠로서 화답해 봅니다.

    同無ー語我ー語秋深みかも

    동무가 한마디
    내가 한마디
    가을은 깊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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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하 2025.09.24 12:35
    댓글로 공부를 돕는 숙비.

    덕분에 무지로 가득한 정신을 보양합니다. ‘시키’가 욕이 아닌 사람인 것을 알고 안심하였지요^^

    시한부로 삶을 떠날 시키와 그 후에도 홀로 남겨져 머무를 교시를 그려봅니다. 교시는 시키에게 하이쿠를 배웠다고 하니, 시키의 정신은 하이쿠를 매개로 교시에게 남겨져 머무른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가을은 둘이지만 둘이 아닌 하나가 되도록 정신이 매개할 터이니까요.

    가을이 깊어 갑니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은 섞임에 있듯 이렇게 댓글로 숙비와 말을 섞게 돼 기쁨을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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